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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종구 칼럼] 법에 대해 말할 ‘자격’과 도돌이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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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과 일관성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사회는 도돌이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는 과거를 딛고 발전을 향한 일보 전진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최근 우리 사회가 앓은 홍역의 열병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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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판사들이 잇따라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맨 먼저 든 감정은 실망과 분노였다. “위헌이지만 무죄”라는 판결문 내용부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뒤이어 ‘내 안에 깃든 이중잣대’를 자각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검찰이 황운하 전 대전경찰청장 등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적용한 것은 엉터리라고 생각하면서,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검찰의 직권남용죄 적용은 정당하며 마땅히 유죄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무조건적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지난 몇달간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깊어진 게 일차적인 이유일 것이다. 문제가 된 사건들은 내용도 각각이고 맥락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표적을 정하면 어떻게든 먹이를 포획하려는 검찰의 본능은 어떤 사건에서든 똑같이 발휘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법농단 사건을 검찰 수사에 맡겨 법리적 쟁점투성이인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보다는 차라리 법관을 탄핵하는 쪽이 옳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검찰 수사 과잉 시대’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할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검찰한테 떠넘기기 일쑤였고, 우리 사회 전체가 사건만 일어나면 검찰 수사를 통한 형사처벌로 사안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것이 ‘괴물 검찰’을 키웠고, 급기야는 검찰이 정치행위 주체로 나서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정치검찰을 통렬히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임미리 교수를 검찰에 고발하는 웃지 못할 현실까지 목도하게 됐다. 이런 모든 행위 안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이율배반적 기대와 이중잣대가 작동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른바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서도 이중잣대 시각은 도드라진다. 추 장관이 그런 결정을 하려면 최소한 공소장 공개에 관한 본인의 과거 언행과 민주당의 행적 등 ‘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성찰과 반성이 선행됐어야 했다. 그것이 빠져버리니 선거를 의식한 이율배반적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즘 내 머릿속에는 세 개의 단어가 화두처럼 맴돈다. 자격, 일관성, 그리고 발전지향이다. ‘자격’의 문제를 따지자면 우리 사회에서 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세력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관성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말은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 그 선두에는 언론이 자리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던 피의사실 공표 문제만 해도 그렇다.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와 언론플레이에 그토록 분노했던 사람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피의사실 공표에 무감각해졌다. 사건의 질적 함의는 다르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 주장은 설득력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자격과 일관성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사회는 도돌이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국민의 알 권리 조화’가 올바른 길이라면 일차원적 단순 비판에서 벗어나 원칙과 기준, 관행을 재정비하는 지혜를 짜내야 옳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조금씩 전진한다. 공소장 공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맞서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공소장이 공개되면 언론은 생리상 대서특필하게 돼 있다. 피의자는 무방비 상태로 당하면서 여론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소장 공개를 요구하는 쪽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그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공소장 공개에 관한 제도 정비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옳은데도 우리는 여전히 자격과 일관성이라는 두 단어에 포박돼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고비고비에서 “왜 유독 조국에 대해서만 인권을 보호하려 안달이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 말의 맞고 틀림을 떠나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유독 조국’에서 ‘국민 일반’으로 인권 보호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피의자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의 가족일 때 우리는 과연 피의사실 공표에 박수를 치고 공소장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에 환호할 것인가. 이제 개별적 보호의 정신은 포괄적 보호의 정신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최근 몇개월간 우리 사회가 앓은 홍역의 열병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내 안에 깃든 이중적 잣대부터 없애는 것이다.

한겨레

김종구 ㅣ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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