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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조기현의 내 인생의 책]④불을 지피다 - 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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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과 뇌와 나

경향신문

1876년 태생의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어린 시절 근육을 팔았다. 해적, 세탁소 , 통조림 공장 등을 오갔다. 하지만 근육은 영원한 생산수단이 아니다. 그는 근육이 아닌 뇌를 팔기로 결심한다. 사회학을 공부하며 자신이 겪은 노동과 빈곤을 정리했다. 소설가로 성공했다. 곧 상류 사교계에 발을 들인다. 그곳에서 하류의 삶을 증언했다. 교양 있는 그들이 즐기는 것이 하류의 노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진실 앞에서 계몽되길 꿈꿨지만, 반대였다. 나태해서 가난하다고 설교하거나 자선사업에 기부했다고 자랑할 뿐이었다.

칼로 가른 듯 선명하게 위아래로 나뉜 감각. 그의 소설은 이 비정한 극단의 세계를 살아가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리라. 소설집 <불을 지피다>는 첫 문장을 눈에 넣으면 어느새 소설의 마지막에 닿아 있다.

마른 낙엽 같은 아이가 되어 강제노역을 한다든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맞는 이주노동자가 된다든가, 영하 50도 혹한에 간신히 지핀 불씨가 사그라진다든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떼쓰지 않고 고통과 죽음에 비정하다. 소설의 풍경과 인물은 서로를 비추며 서로를 극대화한다. 어느새 우리는 풍경과 인물의 운명에 가담한다.

그의 소설의 빠른 속도감은 대중잡지 번영기 산물이지만, 활자보다 이미지가 익숙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돌봄, 가난, 노동의 경험을 담은 첫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쓸 때 풍경과 인물 관계, 그리고 문장의 수칙은 여지없이 ‘잭 런던처럼’이었다.

잭 런던은 근육이 아닌 뇌를 팔게 되면서 삶의 안락함을 얻는다. 하지만 근육의 경험과 단절하지 않는다. 근육과 뇌 사이에서 살아가기. 그리고 독자에게 근육과 뇌 사이 삶을 감각으로 촉구하기. 그의 삶과 작품이 해내고자 했던 것이고, 나의 삶과 작품도 해내고 싶은 것이다.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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