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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기생충'의 힘은 동시대성…우리 시대 솔직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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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4관왕 봉준호 감독 귀국 보고 기자회견

"빈부격차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 시작부터 끝까지 정면돌파"

"보다 도전적인 영화를 산업이 수용해야…곧 좋은 충돌 일어날 것"

아시아경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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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기생충’의 기반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그것이 폭발력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봉준호 감독은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귀국 보고 기자회견에서 세계적 인기를 얻은 비결로 동시대성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적인 면도 있지만, 현대사회의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도 있다”며 “그 부분을 단 1㎝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면돌파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쩌면 관객이 싫어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달콤하게 장식하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뚝심 있는 도전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해외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트로피 174개를 들어 올렸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는 세 번째로 4관왕도 차지했다.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자막의 장벽과 보수적 전통을 동시에 뛰어넘었다. 이 영화는 관객몰이에도 성공했다. 국내에서 1008만5275명을 동원했다.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 2억2000만달러(약 2618억원) 이상의 티켓 수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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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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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지난 6개월 간 전 세계를 누비며 ‘기생충’을 알렸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는 미국에서 머물며 이른바 '오스카 캠페인'에 참여했다.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하고, 관객을 만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는 “북미 배급사 네온이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중소 배급사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마치 ‘게릴라전’ 같았다”고 회고했다. “거대 스튜디오나 넷플릭스 같은 회사보다 예산이 적어서 열정으로 뛰었다”며 “저와 (송)강호 형님이 그만큼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 인터뷰를 600번 이상, 관객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했다”고 말했다.


고단한 일정으로 녹초가 됐지만 개인적 소득도 있었다. 봉 감독은 “저뿐만 아니라 노아 바움백, 토드 필립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바쁜 창작자인데, 왜 일선에서 벗어나서 시간을 들여 캠페인을 하는지, 스튜디오는 왜 많은 예산을 쓰는지,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 적도 있다”면서도 “작품들을 밀도 있게 검증하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점검해보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기생충’은 우리 사회 불균형을 가리키는 작품이다. 국내 영화 제작 현실도 다르지 않다. 대기업 중심의 자본 논리에 따라 일부 감독들만 창작권을 보장받는다. 특색 있는 작품이 줄면서 스크린에는 ‘그 나물 그 밥’인 영화들만 즐비하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작품은 독립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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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제작진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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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열악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또한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실패로 메가폰을 다시 잡지 못할 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더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2000년대 초반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이 나왔을 때는 좋은 의미에서 독립영화와 주류 산업 간 상호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이 주류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독립영화와 주류 산업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봉 감독은 “활력을 되찾으려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다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수용해야 한다”면서 “지금이 그런 변화를 시도할 적기”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독립영화를 돌이켜보면 많은 재능이 이곳저곳에서 꽃피고 있다”며 “곧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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