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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린이집 휴원하면 부부 중 한명은 꼼짝 없이 출근 못해… 인내하는 걸 서로 알아주는 게 맞벌이 부부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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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워킹파파 안재영씨의 육아기

아프면 아빠보다 엄마 찾는 아이들… 육아에 따른 희생은 늘 아내가 더 커

두 아들 홀로서기까지 갈 길 멀지만 서로 토닥여주며 수양하듯 키워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희윤이와 네 살배기 희재, 두 아들 손을 잡고 주말에 집 근처 마트에 가는 길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동네 주민들이 형제를 보고 '잘생겼네' '귀엽네' 하면 입이 귀에 걸린다. 희윤이가 초등학교에서 상장, 아니 그 비슷한 것이라도 받아오면 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오면 아버지가 집에서 상장 수여식을 따로 열어주곤 했는데, 가풍(家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둘이라 이런 행복은 배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퇴근하고 한숨 돌리고 나서거나 아니면 주말에 쉴 때 얘기다. 일터에 나가는 평일 아침부터 저녁, 아니 밤 퇴근 무렵까지는 전쟁의 연속이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에게 육아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특히 양가 어른이 모두 375㎞ 떨어진 경남 창원에서 생업에 종사해 손주들을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부부가 육아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감염병 돌면 맞벌이 육아는 비상

맞벌이라 남편인 내가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며 출근하고, 다른 회사에 다니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 아이들 하원을 맡고 있다. 어찌 보면 남부러울 게 없는 양육 구조다. 하지만 수두 같은 감염병이 돌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을 때, 아이가 독감에 걸렸는데 아내나 나까지 전염됐을 때는 비상이 걸린다. 엄마·아빠 중 한 명은 꼼짝없이 연차 휴가를 내고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

이번 중국 우한발(發)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쉬거나, 첫째의 초등학교 개학이 연기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안재영(41)씨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는 서로의 인내를 존중하는 과정”이라며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녀에 대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7년 5월 미국 연수 시절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한 안씨의 네 식구. 사진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씨와 희윤(10), 희재(4), 안씨 아내(41). /안재영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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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휴가를 내도 말이 휴가지 아이들 돌보면서 집에 있는 동안 안 해본 회사 일이 없다. 은행에 다니다 보니 기업 대출 금리 계산부터, 담보 등기와 저당권 설정, '기표(起票)'라고 불리는 대출금 송금, 경영진 보고 자료 작성, 금융위원회나 국회 정무위원회 요구 자료 작성까지…. 작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업 대출 업무나 상급기관 자료 작성은 늘 마감이 있기 마련이라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고 쉴 순 없다. 이런 가운데 먹성 좋은 두 아들의 배꼽시계는 늘 정확하다. "아빠, 배고파요!"

육아에 희생 감내하는 배우자 존중

이런 스트레스는 아내가 더한데, 아이들이 아프면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간과 벌이는 전쟁에서 고지에 깃발을 꽂는 마지막 전투는 아내를 감싸 안는 일이다.

육아는 아빠가 돕는 게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 몰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워킹파파(일하는 아빠)라고 자처하지만 아직 육아에 따른 희생은 엄마가 아빠보다 클 수밖에 없다. 기쁨은 똑같이 누린다는 점에서 늘 미안하지만, 일과 양육 사이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면 다툴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내 앙금을 풀고 '애들이 어리니까 그렇지 크고 나면 심심할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언제 전국의 어느 지점으로 발령 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딜 가든 함께 간다'는 결심만큼은 한 번도 부부간에 어긋난 적이 없다.

아이들이 홀로서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여기까지 기르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곧 인내의 시간 같다. 부부가 서로 인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게 맞벌이 부부의 사랑이다. 또 그 인내의 목적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엄마·아빠의 자아실현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요즘 시대 자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거나 자녀 계획을 고심하는 부부가 많아 머쓱하지만, 아이 낳는 일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고난 속의 행복'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안재영·KDB산업은행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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