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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영화 리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아수라` `불한당` 이을 한반도 新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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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전도연의 아우라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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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2016), '불한당'(2016)을 이을 한반도 신(新)지옥도가 나왔다. 무심코 굴린 눈덩이가 점점 커져 눈사태로 변하고, 그 주변을 서성인 누구든 재앙의 일부가 되어 내달린다. 영화에서 약간이라도 희망의 메시지를 보고싶어 하는 이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분명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자이로드롭처럼 수직하강하는 서사에 끌리는 관객이라면 필시 마음을 붙들리고 말 것이다. 앞서 '아수라'가 팬 집단 아수리언을 낳고, '불한당'이 불한당원을 잉태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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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아수라`에 이어 범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활인의 얼굴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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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가장 중만(배성우)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지배인에게 인격적 모독을 당하며 팍팍한 삶을 이어가던 그의 앞에 거액이 담긴 가방이 나타난다. "아버지가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겠다"던 중만의 바람이 후회로 변하는 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로 그 돈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아귀가 돼버린 사람들이 절박하게 쫓고 있는 동아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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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연기 베테랑들의 호흡도 좋다. 왼쪽부터 배성우, 정만식, 전도연.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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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밝혔듯 이것은 추락하는 서사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짐승'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존재들의 싸움이다. 이들에겐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없다. 감독도 등장인물을 선악 구도로 바라보지 않는다. 관객 역시 어떤 캐릭터가 보다 영리한 방법으로 불지옥에서 탈출하는지 관람하면 그만이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 중 마음을 줄 만한 이를 발견한다면, 응원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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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이 슬쩍한 돈가방에 모든 악이 달라붙는다는 설정에서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영향이 엿보인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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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중만의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상케 한다. 큰 악의 없이 집어든 돈 가방으로 온갖 고초를 겪는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중만이 억울해할 틈도 없이 카메라는 사채에 허덕이는 태영(정우성), 어떻게든 과거를 지워야 하는 연희(전도연), 폭력남편에 괴로워하는 미란(신현빈),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의 사연을 휘몰아치듯 섞는다.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영화이지만, 굳이 찾자면 '불행이 불법의 변명이 되진 않는다' 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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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의 빠른 이행을 약속하는 태영(정우성)의 손짓이 절박하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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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배우 한 명의 연기만 삐끗해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서사다. 그러나 주조연 모든 배우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대치의 욕망을 발산하면서 영화를 악한 기운으로 휘감는다. 특히, 전도연은 다른 배우가 했다면 우악스럽게 느껴졌을 몇몇 설정조차 본인의 아우라로 덮어버리며 관객 기대치를 넘어선다. 정우성은 '아수라'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합법과 범법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지질한 공무원의 불안한 내면을 리얼하게 표현해낸다. 배성우,정만식, 신현빈, 조여정 등 출연진 간 연기합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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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사장 연희(전도연)는 손님의 갑질을 묵묵히 넘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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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품이다. 잔인한 장면을 못 견디는 이에겐 영원히 끝나지 않는 108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생의 밝은 면을 보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소비하는 이에게도 비추다. 그러나 어쨌든 한 창작자가 자신의 취향을 극단까지 몰고 갔다는 점은 대다수가 수긍할 것이다. 미지근한 이야기보단 확실한 색깔을 드러내는 작품이 점점 선호 받는 시장 상황에도 부합한다. 김용훈 감독은 상업영화 입봉작인 이 작품으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청소년관람불가.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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