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면 요청, MB에 전달…적어도 요청 있다는 점 알았을 것"
이명박 전 대통령 '굳은 표정으로' |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가 2009년 삼성 측에서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이라는 현안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김세종 송영승 부장판사)가 전날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에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 측과 이 전 대통령 사이에 늦어도 2009년 10월 27일경에는 다스에 제공되는 금품이 직무 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해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법리적인 이유로 1심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해 준 것에 대해 단순 뇌물죄를 인정했다.
다스의 미국 소송을 대리한 로펌 '에이킨 검프'의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삼성 돈이 이 전 대통령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는 논리 구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에 삼성이 지급한 돈 중 일부는 에이킨 검프가 이 전 대통령에게 지급한 '법률 서비스 비용'이라는 단순 뇌물이었고, 다른 일부는 다스의 소송을 돕는 제3자 뇌물이라고 보고 나눠 판단했다.
단순 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이 때문에 단순 뇌물죄를 인정한 1심에서는 '삼성의 현안'이라는 정도로만 언급된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었는지 엄밀한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2009년 11월 23일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에서 사면을 검토한 문건에 '이건희 회장 1명을 위한 사면은 전례 없는 특혜 사면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등장한 점을 거론했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해 같은 해 12월 31일 이 회장 1명에 대해서만 특별사면을 단행한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삼성그룹 측의 이건희 회장 사면 요청은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설령 이 요청이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이 전 대통령은 이미 그런 요구사항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에게 1심보다 높은 징역 17년을 선고하면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특별사면권이 공정하게 행사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판례상 '직무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여부는 부정한 청탁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다.
sncwoo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