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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전우 잃은 슬픔에 눈물… 패잔병이란 말에 또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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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6일 천안함 10주기 앞둔 전준영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

"천안함 대하는 정부 태도에 분노… 보훈정책 바로잡는 재단 만들 것"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요.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간 전우들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10년 전 3월 26일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전준영(33)씨가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순직한 전우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잠을 잘 못 자고 북한군에게 공격받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조선일보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씨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순직 장병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전씨는 "천안함 폭침 당시 누구 하나 먼저 살겠다고 하지 않고 서로를 먼저 살리려던 전우들이었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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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이후 만기 제대한 전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천안함을 알리기 위해 천안함 배지를 판매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수익으로 치료가 필요한 생존 장병을 돕고 기부도 한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천안함의 진실이 왜곡되는 현실을 바로잡고자 작년 4월부터는 신청자를 받아 직접 천안함 안보 견학을 진행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10년의 세월을 '세 가지 눈물을 흘린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는 전우를 잃은 슬픔의 눈물이에요.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기들의 목소리가 생생한데…. 나이가 들어 동기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저렇게 어린 친구들인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두 번째 눈물은 천안함 용사들을 패잔병 취급하는 시선에 느끼는 설움의 눈물이라고 한다. 전씨는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돌아오라는 군인으로서 임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 패잔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앞에서는 아무 말 안 하지만 속으로는 찢어지도록 가슴 아프다"고 했다.

마지막은 분노의 눈물이다. 그는 "국가가 보듬어주고 안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제대하고 나니 '남의 자식'이 돼 버렸다"며 "국가가 책임지고 도와주기는커녕 제대로 된 예우도 해주지 않으면서 행사에 필요할 때만 부르는 걸 보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고 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현 정권의 태도에 화가 난다고 했다. "대통령은 서해 수호의 날에 2회 불참하고, 천안함 폭침 주범인 북한 김영철이 방남했죠. 현충일 오찬 때 유가족들한테는 김정은과 손잡은 사진을 나눠주고, 천안함 비하 발언을 한 사람들이 통일부 장관과 국방홍보원장이 됐어요. 평화도 좋고 통일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사과받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전씨는 1980~1990년대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보훈 정책도 문제라고 했다. 특히 터무니없이 적은 전상(戰傷) 수당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상 수당이 한 달 2만3000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국가를 위해 싸우다 다쳐도 이렇게 대우를 못 받으면 누가 전투에 참여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국가유공자 신청과 입증도 국가입증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전씨는 "지금은 개인이 직접 신청도 하고 증빙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없다"며 "부상이 생기면 자동으로 심사 대상이 되고, 국방부가 보훈처에 입증하는 시스템이 생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천안함 생존자들의 보훈 사례를 바탕으로 최근 국회에서 '국군의 권익과 보훈, 혁신 방향과 과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전씨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순직 용사들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 군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천안함 용사들을 비롯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훈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재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죽은 자의 명예가 자랑스럽고 살아남은 자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대전=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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