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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책과 삶]최초의 한류 상품 인삼, 그 ‘은폐된 역사’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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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세계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 464쪽 | 2만5000원

경향신문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자르투가 1711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실은 인삼 그림. 자르투의 보고서는 서양에 처음으로 고려인삼의 산지를 확인해준 사례에 해당한다.


“중개인을 통해 희망봉에서 어떤 뿌리를 받았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 그래서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냅니다. 여기서 이 뿌리는 은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데, 너무 귀해서 보통 사람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쓰시마 번주에 의해 무조건 일본 천황에게 보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합니다.”

1617년 일본 주재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원이 런던 본사에 인삼 꾸러미와 함께 보낸 통신문이다. ‘고려인삼’이 서양과 만난 첫 기록이다. 조선에서 일본, 남아프리카를 거쳐 런던에 이르는 인삼의 여정도 ‘대항해시대’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세계사’에서 인삼에 대한 기록을 보지 못했을까. 서양사학자 설혜심 연세대 교수가 쓴 <인삼의 세계사>는 수많은 서양 문헌에서 인삼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 ‘은폐된’ 인삼의 역사를 복원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한 쇼핑몰에서 ‘아메리칸 진생 페스티벌’을 본 데서 처음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미국인삼이라니, 인삼은 한국 고유 산물이 아니었던가? 그는 재미삼아 19세기 영국 소도시 신문기사를 모은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ginseng+Corea’를 검색해본다. 놀랍게도 200개 넘는 기사가 검색됐다. 서양사람들이 이토록 관심을 가졌다니,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삼은 ‘최초의 한류 상품’이었다.

인삼은 17세기 유럽의 해외 팽창과 맞물려 서양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과의 무역에 혈안이 됐던 서양은 중국인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열광하던 인삼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동아시아에 파견된 예수회 신부들이 인삼을 직접 경험하고 쓴 보고서와 중상주의 기치하에 인삼 연구에 매진한 유럽 지식인들의 논문이 쏟아진다.

경향신문

프랑스 작가이자 판화가이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생 소뵈르(1757~1810)가 그린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는 ‘아시아의 민족들’이라는 판화 시리즈에서 편견과 왜곡이 가득한 시선으로 한국인을 마치 사막에 사는 야만인처럼 묘사하면서 여성이 들고 있는 것(그림 가운데)을 ‘인삼’이라고 특정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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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존 로크와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인삼의 효능에 대해 질문한 편지나 프랑스 루이 14세가 인삼을 선물받은 일 등 흥미로운 기록들이 남아있다. 근대적 식물분류 체계를 수립한 린네 등 식물학자들이 ‘진짜 인삼’이란 무엇인지 분류법을 고민한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인삼은 세계 무역망에도 편입된다. 세계 상품인 인삼은 동아시아라는 중심부와 유럽-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주변부의 이중구조 속에서 유통된다. 이를테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유럽 중심의 세계체제이론으로 포섭할 수 없는 이질적인 성격의 대규모 교역이 이뤄진 셈이다. 책에선 조선 상인들이 인삼을 일본에 수출해 받은 은으로 중국에서 비단을 사 이득을 남기는 동아시아의 삼국교역에 주목한다. “세계 최대 은 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 은 공급자(일본)를 조선의 인삼이 매개하는 거대한 흐름”(주경철 교수)이었다는 설명이다.

더 특기할 지점은 북아메리카 인삼의 등장이다. 책에 따르면 인삼은 미국의 첫 수출품이자 수출 효자 상품이었다. 18세기 초 북미에서 처음 인삼이 발견된다. 영국은 북미에서 가져온 인삼을 중국에 팔면서 높은 수익을 올린다. 서부로 확장해가는 백인들의 이주 움직임과 함께 인삼의 발견지도 확장돼 가고,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1784년 첫 중국 수출에 나선다. 중국인들이 배에 꽂힌 성조기를 ‘화기(花旗, flowery-flag)’라고 부르면서 미국산 인삼은 ‘화기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884년 상반기 미국 총수출액 100만달러 가운데 인삼이 25만달러를 차지할 정도로 인삼은 신생국가 미국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미국이 인삼을 채취·재배해 수출한다는 사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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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양은 인삼을 은폐했을까. 저자는 인삼이 역사에서 지워진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서양 지식체계’에 편입되지 못한 탓이다. 18세기 후반 서양에선 약의 제조 관행을 통일하고 기준을 만드는 ‘약전 개혁’이 본격화된다. 커피에서 카페인, 아편에서 모르핀을 추출하는 식으로 식물의 유효성분을 찾는 것이다. 인삼은 약전에서 제외되거나 폄하된다. 당시 기술로선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을 분리정제하기 어려웠고, 실험에 사용한 인삼도 질 나쁜 북미삼이나 아시아삼을 사용하다보니 실험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양에 대한 멸시, 오리엔탈리즘이 맞물린다. 중국을 깔보는 시각은 중국 약재인 인삼을 ‘열등한 것’으로 보는 평가로도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책에선 서구 언론들이 중국 최고 권력자들이 최후의 순간에 인삼을 찾는 장면을 기사화해 동양의 후진성을 부각한다든지, 인삼에 관한 미신과 설화, 심마니를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진 존재로 대상화하는 방식 등 서구의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드러낸다.

저자는 은폐된 인삼의 세계사를 추적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의 인식을 환기한다. “서양의 많은 나라가 인삼을 재배하고 수출하고 있지만 인삼은 여전히 열등하고 비합리적인 동양성에 갇혀 있다. 이 지점은 동아시아가 구심점인 인삼의 세계-경제체제와 이를 부정하고 싶은 서구중심주의가 지난하게 충돌해온 역사를 품고 있다. ‘인삼의 세계사’는 의약학의 성패가 의약적인 효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좌우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 거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균형 잡힌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인삼 같은 상품의 ‘사회적 삶’을 ‘약리작용’과 ‘현재적·상업적 효과’를 넘어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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