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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위근우의 리플레이]‘매불쇼’ 진행 최욱, 팟캐스트 황태자의 소신 발언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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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그랬어” 김용민 MC ‘하차 부당’ 주장이 놓친 세 가지

경향신문

최근 방송인 최욱은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최욱, 생애 최초 손 벌벌 떨며 소신 발언하다!’편을 통해 지난 2월 초 KBS <거리의 만찬> 시즌2 MC로 내정됐다가 자진하차한 시사평론가 김용민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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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불쇼>의 최욱, 팟캐스트 황태자의 소신 발언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소신(所信):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 ‘소신’의 사전적 의미는 그 자체로 발언하는 이 스스로의 진심만을 뜻할 뿐, 그것의 진리성과 타당성을 보증해주진 않는다. 지난 2월13일 방송된 국내 2위 팟캐스트(팟빵 기준, 팟캐스트 오리지널로는 1위)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이하 <매불쇼>) ‘최욱, 생애 최초 손 벌벌 떨며 소신 발언하다!’ 편을 들으며 새삼 ‘소신’의 본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것이 최욱 본인의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것 외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 초 KBS <거리의 만찬> 시즌2 MC로 내정됐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과거의 문제 발언 때문에 비판받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한 과정에 대해 자신을 “방송인으로 낳아준” 김용민 편에 서서 “살면서 처음으로 소신 발언”을 했다. 그는 문제가 됐던 김용민의 “유영철을 풀어가지고 라이스(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는 아예 강간을 해서 죽이는 거예요”라는 과거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전제했지만 그럼에도 하차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혹시 모를 문맥의 왜곡을 피하기 위해 그의 발언을 수정 및 생략 없이 검토해보겠다.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프로그램에 김용민을 써서 프로그램을 망칠 생각이냐, 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그런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최근 시청률은 1.6%다.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이면 봐서 지켜주지 그랬는가.”

세 가지 면에서 틀린 말이다. 그는 김용민 하차를 주장하고 청원을 올린 사람들이 <거리의 만찬> 시청자가 아닐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아닌 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 해당 이슈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론화하고 이의 제기를 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들임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가 이야기한 시청률은 시즌1 종영이 확정된 이후의 스페셜 방송 시청률로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가서 듣는 본편 에피소드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거리의 만찬>은 KBS1에서 방영 당시 4~5%대 시청률을 준수하게 유지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이후 KBS2로 채널을 바꾸고 방영시간대를 옮기면서 오히려 시청률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의 의의에 공감하고 아끼던 이들이 지켜주지 못한 것인가, 이 “따뜻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홀대한 방송국이 문제인가. 다행히 최욱은 KBS도 비판했다. 다만 방향이 잘못됐다.

“KBS에서 김용민을 MC로 기용하기로 할 때 내부 이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했다면 지켜냈어야 한다. 돌발 변수가 아니었다. 방송 중에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터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나조차 예상했다. 한 개인이 허허벌판에서 갈기갈기 찢길 때 KBS는 당사자인데 방관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모든 책임을 개인 김용민에게 떠넘긴 꼴이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봤더니 <거리의 만찬> 시즌2는 프로그램 제목과 취지에 맞게 소외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철탑에 오르고 새벽에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만나러 가는 강행 촬영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제작진은 부리기도 쉽고 부르기도 쉬운 김용민이 적격이라고 판단했겠지.”

하차 청원 ‘거리의 만찬’ 시청자 아니다 전제, 김씨 지킬 이유인가

‘가짜 미투’ 등 문제 발언, 약자에 공감 감수성 있다 기대할 수 있나

여성 MC 하차, 비정상의 정상화에서 다시 비정상화 ‘젠더 문제’돼

팬덤 지지 받는 김씨 교체 ‘젠더 프레임’ 때문에 왜곡은 아니잖나


그의 말대로 김용민이 비판을 받을 때 KBS가 방관자처럼 책임을 회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MC로서의 김용민을 지켜야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의 말대로 합당한 내부 이견이 있었다면 KBS는 김용민을 선택한 결정을 철회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민이어야 할 이유를 내부 비판자와 시청자들에게 납득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청원을 통해 이견이 응집되자 강행을 고집했고, 그럴수록 그가 해당 프로그램을 맡아서는 안될 이유가 속속 더 드러났다. 문제가 된 과거 발언 외에도, 그가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 <우먼스플레인>에서는 지난해까지도 ‘안희정은 무죄다’라는 요지의 방송으로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혔으며, 김용민 스스로도 지난 1월 말 친구 정봉주에 대해 “‘가짜 미투’ 파문으로 1년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을 살았노라 SNS에 옹호의 변을 남겼다. 잊었을까봐 말해주면, 정봉주 본인은 성추행 피해자와 그 시간에 호텔에서 만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이를 친구 김어준이 지상파인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보증해주었지만, 호텔에서 사용한 카드 명세서가 들통나며 “모든 공적 활동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 ‘가짜 미투’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이 과연 사회적 약자에 공감할 감수성을 지녔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최욱이 말한 “강행 촬영”이 꼭 김용민이어야 가능할 이유도 없다. 기존 MC들도 투쟁 중인 한국도로공사 노동자들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KBS가 절차적 합리성을 지키지 못해 잘못된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시청자에게 또 김용민에게도 사과할지언정, 잘못된 선택을 유지할 어떤 근거도 없다. 이처럼 처음부터 잘못된 과정을 밟았던 일을 정당화하려니 최욱은 김용민 하차 과정의 외부 압력의 부당성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양희은 선생님의 ‘우리 여자 셋은 MC 자리에서 잘렸다’는 글 때문에 이 일은 완벽한 젠더 프레임에 갇혔다. 다시 말하지만 <거리의 만찬>이란 프로그램은 여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수자,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평생 양희은 선생님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제작 여건에 안 맞거나 시청률이 안 나오면 출연자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조금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김용민이 양희은 선생님보다 방송인으로서는 더 소수자고 더 약자다.”

김용민 발탁 자체가 절차적으로 잘못된 상황에서 그의 하차 절차가 부당했다고 비판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주장이다. 그럼에도 굳이 따져보면, 해당 문제가 “젠더 프레임에 갇”히며 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최욱의 논리 같다. 위에서 예로 든 말과 행동을 하고도 멀쩡히 지상파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DJ도 맡고(최근 자진 하차), <나는 꼼수다> 팬덤의 여전한 지지를 받아온 김용민을 소수자, 약자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개인 김용민이 그러하다 해도 이번 MC 교체 문제가 젠더 프레임 때문에 왜곡된 것은 아니다. 최욱은 <거리의 만찬>이 “여성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 <거리의 만찬>은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나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가 아니다. 이들 프로그램처럼 기존 여성 중심 방송은 제목부터 ‘언니’나 ‘걸스’를 붙이며 특정화되어야 했다. 그에 반해 전원 남성인 방송은 얼마든지 성별로부터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인 제목을 썼다. 여성들은 보편의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구체적 차별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가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사교양 <거리의 만찬>은 전원 여성 MC로 구성됐다. 즉 이제야 시사 분야에서 여성이 보편적 이름으로 호명될 기회를 얻었고, 이를 정체성 삼아 응원도 받았다. 이제야 방송 내 성비 불균형이란 비정상의 정상화가 조금 시작됐는데, 그걸 다시 비정상화하는 것이 왜 젠더 프레임을 벗어나야 하는가. 침묵하는 KBS의 행태를 보며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세 여성 MC에게 일방적이고 급작스러운 하차 통보가 떨어졌고, 그나마 여성 방송인 중 양희은처럼 배포와 경력 있는 선생님 정도 되어야 방송국 눈치 안 보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젠더의 문제다.

그럼에도 기어코 <매불쇼>의 멤버 정영진은 “젠더 이슈란 것만 나오면 어떤 논리적인 이야기가 불가능한,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상황이 된다. (중략) 어떤 사상이든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공론의 장에서 옳으니 그르니 이런 말들이 와야 되는데, 이 문제만큼은 강약 게임이 됐다. 소위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맞냐 그르냐 이전에 약자 편에 서버린다. 강자라고 판단한 사람에게 무조건 공격을 하는 거지. 그러면 실제 강자가 아닌 사람임에도 무리에 끼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이 몇 년째 벌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공언하는 최욱도 이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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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혹시 잊었을까봐 이야기해주자면, 바로 그 공론의 장을 위해 만들어진 EBS <까칠남녀> 패널이었던 정영진이 팟캐스트에 나가 함께 출연 중인 여성 패널들에 대해 “거기 나오는 여성분들의 주장은 너무 답답”하다 뒷담화를 하고, “나 같으면 이 X년아” 했을 거란 진행자 이동형의 말에 함께 박장대소하며 논의를 망쳤다. 그럼에도 정영진 본인은 MBC <100분 토론>에 젠더 갈등(이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지만) 이슈가 나올 때마다 패널로 섭외됐고, 이동형은 지금도 YTN 라디오에서 시사 프로그램 DJ를 맡고 있다. 대체 젠더 이슈의 부당한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편의적으로 삭제된 기억 속 상상의 나라에서 펼치는 이들의 소신이란 대체 무슨 의미일 수 있을까. ‘벌벌 떨며’ 했다던 <매불쇼> 해당 회차의 유튜브 버전엔 ‘좋아요’ 1만2000개가 눌렸다. 떨어도 내가 떨어야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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