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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고려인삼만큼 유명했대요…`1784 미국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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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냅니다. 이 뿌리는 은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데, (중략) 이곳에서 이 뿌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합니다." 1617년 일본 주재 영국 동인도회사 상관원(商館員) 리처드 콕스는 런던 본사에 고려인삼과 함께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 시절 고려인삼이 유럽에까지 진출했음을 알려주는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공식 기록이다.

'한국' 혹은 '중국'을 떠올리게 하는 인삼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보편적인 상품이었다. 커피, 사탕수수, 면화 등과 함께 17세기부터 세계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다. 독립국가 미국의 첫 수출품도 인삼(화기삼)이었다. 과거 식민지 시절 인삼 무역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1784년 '중국황후'호에 인삼을 꽉 채워 실어보냈고 이때부터 인삼은 미국의 수출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인삼 자체 효능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다. 1687년 루이 14세가 중국에 파견한 신부 루이 다니엘 르 콩트는 '인삼이야말로 중국이 자랑하는 탁월한 강심제이자 만병통치약'이라고 보고를 올렸다. 1736년 파리의과대 박사과정생 뤼카 오귀스탱 폴리오 드 생바스는 박사 논문 '인삼, 병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가?'에서 인삼이 질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건강도 증진시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당사자인 서양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세기 중반부터 서양은 자신들 역사의 일부로 인삼을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우선 뛰어난 의학기술로도 인삼의 유효성분을 제대로 추출하지 못하는 데서 좌절했다.

"사실 미국인들은 정교한 가공법을 개발하기보다 닥치는 대로 수출하기에 바빴다. (중략) 서구 의약학계는 인삼의 유효성분을 추출하기 위한 균질한 샘플조차 추려낼 수 없었다. 화학자이자 동식물학자였던 라피네스크는 인삼에서 충분한 유효성분을 추출해내지 못한 것이 '자신들의 무지 탓'이라고 인정했다." (281~282쪽)

이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인삼은 '동양의 전유물'이 됐다. 경제 발전에도 기여한 '미국 심마니'와 수출업자, 투자자는 역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았고, 미국 내에서 미국 인삼을 팔 때도 '중국에서 엄청나게 높이 평가되는 인삼'이라는 홍보 수사로 인삼은 '동양화'됐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에서도 화기삼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역사학자 설혜심은 이 책을 통해 서양인이 잘 모르는 '인삼의 세계사'를 알려준다. 동양 인삼에 대해선 정책과 교역 상황 등을 소략하고 '당시 서양인들이 바라 본 인삼'을 탐구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의학 논문부터 시작해 동인도회사 보고서, 식물학 책, 신문 기사, 소설 등 서양 문헌 속 인삼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찾았다. 참고문헌 목록만 25쪽에 달할 만큼 저자의 지적 성실성이 돋보인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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