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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박효재의 ‘딥다 파기’]이란, 미국 핵합의 탈퇴 후 첫 선거…왜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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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11대 총선일인 21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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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에 따른 대이란 제재 복원 이후 처음 열리는 이란 총선에서 누가 웃게 될까. 이란 전체 31개 주 200여 개 선거구에서 21일(현지시간) 4년 임기의 의회(마즐리스) 의원 290명을 뽑는 총선이 시작됐다.

이번 선거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핵합의를 성사시킨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하다. 미국의 제재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보수 진영의 승리가 예상된다. 특히 앞서 총선 후보 예비 심사에서 중도·개혁파가 상당수 제외되면서 선거구도는 보수 대 강경 보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서방과 대화 노선을 유지해 온 로하니 정부의 대외정책은 더 큰 반대에 부딪치고, 핵합의 탈퇴까지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이란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역설적으로 핵합의 관련 대화 기피 대상인 보수 진영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11월 이란 제재를 전면 복원하면서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를 발동했다. 지난해에도 철강 금수조치를 추가하고, 이란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제재를 이어갔다. 그 결과 현재 이란의 인플레이션율은 33.5%까지 올랐고,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6%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정부의 휘발유 보조금 삭감 조치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일어났다. 로하니 정부가 서구 국가들과 대화에 나섰음에도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여기에 올초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에 암살되면서 보수 진영이 더욱 힘을 얻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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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1일(현지시간) 국회의원 선거를 마친 유권자들이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등 투표 인증을 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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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테헤란의 결과는 민심 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잣대다. 2016년 총선에서는 핵합의를 지지하는 중도·개혁파 후보가 테헤란에 배정된 30석을 모두 가져갔다. 하지만 선거 후보 심사 및 선거 감독 임무를 관장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이미 중도·개혁 성향 인물들을 후보에서 대거 제외하면서 보수파의 승리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선거 후보 신청을 한 전체 1만5000명 중 절반 이상을 탈락시켰다. 후보 등록에 실패한 인물 대부분이 중도·개혁 성향으로 알려졌다. 중도·개혁 성향 현역 의원 81명의 후보 재등록도 막혔다.

로하니 정부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중도·개혁 성향 의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총선 전날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과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위원회(SNSC) 의장은 소셜미디어에 국민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글을 잇따라 올렸다. 자리프 장관은 이날도 투표를 마친 뒤 “이란 국민들은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운명을 결정짓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투표를 독려했다. 샴카니 의장은 “국가는 강력한 의회 없이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며 정부 지지를 호소했다.

이란은 이슬람법학자 통치체제에 따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대외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이란 의회가 대외정책에 갖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란 의회는 2015년 핵합의 승인처럼 국제조약을 비준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미국과 현재 대치 국면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와 제재 복원은 재협상 압박용 카드라는 게 중론이다. 로하니 정부는 아직은 트럼프 정부와 대화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대화 재개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번 선거로 보수 성향 의원들이 대거 의회에 입성한다면 핵협상 관련 대화 논의 자체가 거부되고, 이란도 핵합의를 탈퇴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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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21일(현지시간)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테헤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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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란 의회 내 보수파들은 전체 290석 중 83석에 불과하지만, 해외 친이란 무장조직 지원 자금 마련 수단이자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근거인 돈세탁을 금지하는 법을 막았던 전력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반미 강경 보수파의 입김이 훨씬 세지고, 이란의 국제사회 고립이 심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차기 국회의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이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로하니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경 보수파들의 군사기반인 혁명수비대 공군장교 출신으로 군소속 건설사업부대 하타몰안비야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로하니 대통령에 맞설 보수 진영 후보 경쟁을 펼치면서 선거 막판까지 대립각을 세웠다. 갈리바프가 국회의장이 되면 로하니 정부의 대외정책은 지금보다 훨씬 강한 반대에 부딪칠 수 있다.

이번 총선에는 총 7148명 후보가 출마해 평균 2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만 18세 이상 유권자는 5800만 명에 달한다. 투표는 21일 하루동안 치러지지만 개표는 수작업으로 이뤄져 최종 결과 발표까지는 사흘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투표율은 지난 총선 때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도시 지역에서는 혁명수비대를 앞세운 강경 보수파들의 해외 친이란 무장조직 지원 등 무분별한 확장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고, 선거 보이콧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겠다는 여론 또한 높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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