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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직원 500명 대형마트, 폐점땐 지역민 450명 거리 나앉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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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오프라인 유통업 / 지역 일자리·경제 붕괴 우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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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트'에서 일할 때가 좋았어요. 집 근처에서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컸지요."

전주 롯데마트 덕진점에서 매장 상품을 진열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행복사원'으로 일했던 이 모씨(51). 7시간씩 교대 근무하며 기본급 150만원을 받았지만 집에서 가깝고 교통비도 들지 않아 마트 인근 송천동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인기' 직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해 6월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최근 계속되는 영업 부진과 규제 여파로 대형마트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마트의 폐점은 단순히 점포를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에만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다. 점포 소재지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마트에서 급여를 받아 생활해온 지역 주민들 일자리를 빼앗을 뿐 아니라 마트를 찾는 유동인구를 없애면서 그 덕택에 장사를 이어온 지역 상권마저 무너뜨리는 연쇄반응을 불러온다. 마트를 중심으로 한 제조 유통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구체적인 업태별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유통 업계에선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를 중심으로 다운사이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또 폐쇄되는 점포의 직원은 '재배치'되며 인위적인 인력 감축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매일경제가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인력을 분석한 결과 500여 명 중 점포가 문 닫을 경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직원 수는 1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예를 들어 롯데마트 A지점에서 일하는 직원은 542명으로 이 중 정규직은 168명, 나머지 374명은 협력사 직원이다. 협력사 직원은 판매직(168명)이 대부분이고 시설 담당(7명), 청소(10명), 주차 및 카트 담당(8명) 등이 뒤를 잇는다. 이들 협력사 직원은 롯데쇼핑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부터 '고용 보장'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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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통업체들이 점포 정리를 발표하면서 일자리가 5만개 이상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한산한 모습.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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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쇼핑 정규직 직원이라고 해도 상당수는 일자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직에는 점장 등 마트에서 공채로 입사한 관리직이 4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씨처럼 진열 업무나 캐셔 역할을 맡는 무기계약직이다. 관리직은 대부분 본사 지시에 맞춰 전환 배치를 수용하지만, 이씨 같은 무기계약직은 일부만 이직을 선택한다. 마트 일자리 자체가 지역 기반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실제 A지점 근무자 542명 중 92.3%에 달하는 500명이 해당 점포 소재지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를 포함한 덕진점 행복사원 대부분도 덕진점이 있는 송천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여기에 집안일도 같이 맡아야 하는 주부가 많은 만큼 점포를 옮겨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마트가 폐점하면 마트 안에 입주한 업체들도 줄줄이 문을 닫게 된다.

대형마트 하나에 입점한 외부 업체는 식당 18곳, 화장품 매장 7곳, 보석·시계방 11곳, 미용실 1곳, 세차장 1곳 등 50개로 이들 자영업자 운명도 마트와 같이하게 된다. 여기에 일하는 직원도 롯데마트 직원과 별개로 170여 명에 달한다. 마트 폐점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은 지역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은 2017년 자료에서 대형마트 1개 점포 출점 시 해당 시·군·구 평균적으로 250여 명의 고용창출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마트 1곳에 근무하는 직원이 받는 급여는 월평균 200만원, 542명이 일하는 롯데마트 A지점의 전체 직원으로 보면 총 10억8400만원에 달한다. 1년으로는 130억원 규모다.

대형마트를 찾는 유동인구 덕택에 장사를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에게도 마트의 종말은 재앙으로 인식된다. 대형마트는 지역 상권의 '앵커 테넌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마트에 찾아오는 유동인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은 마트 영업이 생계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최근 매출 부진으로 구조조정 가능성이 예상되는 서울 소재 한 대형마트 인근에서 15년째 세차장을 운영하는 업주 B씨는 "세차하러 오는 손님은 사실상 모두 마트 손님"이라고 말했다. B씨 세차장이 있는 상가건물의 핵심 테넌트가 대형마트라서다. 그는 "예전만 해도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자리가 없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그나마 아직까진 가까운 아파트 주민들이 마트에 들렀다가 세차장을 찾는데 상황이 바뀌면 그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형마트를 판로 삼아 상품을 납품해온 중소상인들에게는 마트 1곳이 사라지는 것은 그만큼의 판매처가 증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마트 1곳이 취급하는 상품은 신선·가공·생활·잡화 등 3만개, 하루에 올리는 평균 판매액은 2억5000만원이다. 한 달로는 70억원, 연간으로는 840억원이다.

경기 여주에서 농사를 지어 롯데마트에 고구마와 감자, 양파를 납품하는 이대영 우농영농조합 대표는 "가뜩이나 의무휴업 때문에 납품량이 확 줄었는데 마트 폐점까지 이어지면 마트가 주 거래처인 신선식품 납품사들은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 강인선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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