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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최저임금, 아이슬란드선 노사가 알아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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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래탐험대 100] [92] 알바하는 대학생 이승주씨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은 위험" 이자·세금 낮추는 등 뒷받침만

시민들 "최저임금? 얼만지 몰라"

"아이슬란드에선 정부가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대신 노사가 직접 임금을 협상하지요."

아이슬란드 노동조합 연합(ASI)의 마그누스 노르달 대표 변호사는 "아이슬란드에선 '최저임금'이란 개념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 해온 나는 연평균 급여가 6만6504달러(OECD·2018년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인 아이슬란드에 관심을 가져왔다.

아이슬란드는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는다. 직업군을 대표하는 노조 150여개가 각 고용주 단체와 얼마를 받을지 협상한다. 다만 ASI와 기업연합(SA)이 맺은 단체 협약에서 명시한 임금보다는 많아야 한다. 올해 아이슬란드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매달 최소 31만7000크로나(약 300만원)를 받아야 한다.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 없이도, 노동시장 참여자인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맺은 협약에 따라 '협정 최저임금'을 법이 보장하는 셈이다.

조선일보

아이슬란드대를 찾은 이승주 탐험대원이 교내 서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는 모습.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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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선 협약을 어긴다고 고용주가 처벌받지는 않는다. 한쪽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처벌이란 국가 강제력을 행사하기보단 대화를 통해 일을 해결하라는 취지다. 노르달 변호사는 "새로운 임금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서는 처벌보다 대화가 낫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노사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난해 협정 최저임금을 노사 합의로 인상할 때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세금을 낮추는 등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데 그쳤다. 경제 전문가 올라퍼 할도르손은 정부가 깊이 개입하는 한국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설명하자 "정부가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은 위험하다"며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이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남발하는 부작용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위원회는 사용자위원(기업 대표) 9명, 근로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기업과 근로자는 임금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는데 이들이 정부의 '아바타'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심은 어떨까. 상점이 밀집한 뢰이가베구르 거리,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흘레무르 광장 푸드코트, 해안가 산책로 등 곳곳에서 시민 30명에게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지난해 협정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30% 올랐지만 '인상 후 마땅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25명)는 답이 돌아왔다.

이는 대부분 협정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물류정리 아르바이트를 한 대학생 마리노 올라프슨은 한 달에 세전 약 47만2000크로나(약 450만원)를 벌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약 2800크로나(약 2만7000원) 정도다. 협정 최저임금인 31만7000크로나를 웃돈다. 그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최저임금만 받고 일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학생 에밀 크리스티얀손(23)은 "노동조합은 보통 임금 인상을 원하고 고용주 연합은 반대한다"며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경제 상황, 고용 시장의 수급에 따라 임금이 유연하게 결정되는 편이 자유시장경제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이승주 탐험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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