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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위험 중립이라더니 초고위험에 투자…‘뒤통수’ 치는 사모펀드 위험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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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판매 ‘라임레포플러스 9M’

플루토FI D-1호 50%까지 투자가능

4등급인데 1등급 자산에 44% 투자

확정금리로 설명하고 절반 손실 위기

펀드 등급기준 실재위험도 반영 미흡

사모펀드는 규정 없어 운용사 멋대로

금융위 “원래 그래…판매사가 역할을”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펀드 위험 등급이 4등급(보통 위험)이라 그래서 믿었죠. 그런데 1등급(매우 높은 위험) 자산을 절반이나 편입한 거에요.”

지난해 7월 기업은행이 판매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라임 레포 플러스 9M’에 가입한 A 씨는 펀드 환매 중단 소식을 듣고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다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는 4등급인데, 가장 위험한 등급(1등급)의 ‘라임 플루토 FI D-1호’ 사모펀드를 50%까지 편입할 수 있도록 상품이 설계돼 있었던 것이다. 실제 A 씨가 가입한 펀드 자금 44%가 해당 펀드에 들어갔다. 해당 펀드는 라임 사태로 환매가 중단된 4개의 모(母) 펀드 가운데 하나로 손실률이 46%다.
헤럴드경제

[사진=라임자산운용의 한 사모펀드 설명서. 설명서 맨 첫머리에 '위험등급 4등급'(붉은색 맨 윗부분)이라 쓰여 있는데, 위험등급 1등급의 '라임 플루토FI D-1호' 펀드를 50%까지 편입할 수 있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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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가 확보한 펀드설명서에는 제일 첫머리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펀드 이름과 함께 ‘4등급(보통 위험 등급)’이라고 적혀 있다. 펀드의 가장 핵심이 되는 특징을 ‘4등급’이라 설명한 것이다. 아래 쪽에는 ‘라임 플루토 FI D-1호’ 펀드가 “확정금리성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과 두세달만에 수억원을 날릴 처지에 처한 A 씨는 “처음부터 속이기 위해 등급을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라임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의 위험등급 책정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실질적으로 아무 규제도 없이 방치되는 탓에 라임자산운용과 같이 악용될 경우 사기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위험등급와 관련한 어떠한 규정도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위험등급 책정 및 공시 의무가 없고, 권고되는 기준도 없다”며 “펀드 설정 이후 사후 등록 형식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사전 심사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상품은 정량적·정성적 요소에 따라 초고위험,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 초저위험 등 5단계로 분류한다. 고위험 상품군의 경우 자산운용사의 펀드 중 2∼3등급, 채권 중 BB+이하, 기업어음·전자단기사채 B+이하, 해외채권 C 이하,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 중 원금 비보장형 상품이 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부적인 투자권유준칙은 금융투자회사마다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다. 공모펀드의 경우 2016년 수익률 변동성에 따라 ‘매우 높은 위험’(1등급, 수익률 변동성 25% 초과)~‘매우 낮은 위험’(6등급, 0.5% 이하)의 6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다만 사모펀드는 이러한 규정의 예외다. 자산운용사가 임의로 정해도 무방하다. 라임이 초고위험 자산을 50%나 편입한 펀드를 4등급으로 분류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후에라도 위험등급이 적절하게 책정됐는지를 심사하는 절차도 없다. 편입 자산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모펀드의 위험등급 책정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시장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편익을 저울질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을 때도 위험등급 관련 내용은 빠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위험등급을 사전 심사하고 공개하게 할 경우 공모펀드와 차별성이 없어지게 돼 좀 더 판단이 필요하다”며 “이번 대책에 신탁사와 판매사가 운용사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일정 부분 보완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가 사모펀드의 위험등급을 마음대로 책정하게 방치한 것이 불완전판매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라임 사태처럼 등급 자체가 소비자를 혼동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 실장은 “금융투자상품을 특정 등급으로 책정했다면 판매할 때 투자자에게 왜 그러한 등급으로 책정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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