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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시대탐문] 지지층 狂的 편들기 즐기는 리더,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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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시대탐문] [8] ‘대한민국, 무엇이 위기인가’ 낸 정치학자 양승태 梨大 명예교수

자유로운 토론 꺼리는 지도자가 국가를 패거리정치에 휩쓸리게해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될 나라? 혜택 다 누리며 존재 부정하다니

친일 청산 역시 국가 분열 행위… 진보, 위선의 역사의식에 빠져

‘교양 없는 여인 하나가 사이비 선지자의 후광을 업고 저질러온 월권과 파렴치한 행위, 그런 여인에 국정을 일방적으로 의탁한 대통령의 편집광 수준의 아집….’

서양 정치철학 전공자인 양승태(71)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2016년 대중 학술지 '철학과 현실' 겨울 호에 탄핵 정국을 정치철학으로 분석한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름대로 원칙은 있지만 국가 통치에 대한 깊은 경륜과 식견이 부족했으며, 자유로운 소통과 진지한 토론을 거부한 채 일방적인 권력 행사에만 몰두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그러한 행동을 무책임하게 방임했으며 국가적 위기를 경고하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지식인 사회의 무기력 또한 탄핵 정국을 불렀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과 '반(反)지성주의적 피로감'이 탄핵의 정신적 배후였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양승태 교수는 "학문과 교육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나. 교육자의 핵심적 역할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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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교수가 이달 출간한 '대한민국, 무엇이 위기인가'(철학과현실사)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다. 지난주 만난 양 교수는 "일관된 원칙도 없고 자기의 사유세계를 갖지 못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이 통치자가 될 경우, 국가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착하고 반듯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정치가도 자기 사유세계가 없으면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모순된 말을 한다고 썼다. 문재인 대통령을 말하는 것인가.

"이름을 거론하고 싶진 않다. 자기만의 사유와 논변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배우는 걸 꺼린다. 겉으로는 선량해 보여도 자신의 편협한 정신세계와 어울리는 이들과의 대화에 만족할 뿐이다. 그런 인물이 통치하면 국가를 패거리 정치에 휩쓸리게 할 수 있다."

―대통령은 '문빠'의 극성 행동을 '일종의 양념 같은 것'이라고 옹호했다.

"지지세력 없이 권력을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 장악 후에는 폭넓게 인재를 등용할 수 있어야 패거리 우두머리가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지지층의 광적인 편들기를 즐기고 있다."

―진보가 허구와 위선의 역사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한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국가로 믿는 사람들은 북(北)으로 망명하는 게 일관된 행동이다. 대한민국 안에서 혜택을 누리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건 국가 구성원으로서 자기부정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은 누리면서 그것을 가능케 한 국가 총력적인 정책은 도덕적으로 폄하하거나 민주주의는 의지만 있으면 실현할 수 있다는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상숭배'는 위선과 허구이다. 문재인 정권은 위선과 허구의 역사의식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은 작년 3·1절 때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했다.

"독립운동은 당연히 민족사적으로 칭송하고 찬양해야 한다. 하지만 독립운동만으로 독립이 가능했다고 얘기하는 건 허구다. 함석헌이 얘기한 대로 해방은 우리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세계사적 행운으로 찾아왔다. 친일을 싸잡아 매국노나 반민족적 범죄자처럼 단죄하는 건 역사적 실체와 어긋나고 민족사적 정의구현도 아니다."

-일제 강요에 의한 친일이라도 친일 아닌가.

"강제병합으로 나라는 빼앗겼지만 교육·종교·언론계 등 시민사회는 그대로 존속했다는 사실의 정치학적 의미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3·1운동의 시발은 일본 유학생들이며, 임시정부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지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시민사회 지도자들은 일제 탄압과 통제 속에서 조직 와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일본 정책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식민통치 체제에의 불가피한 적응을 전쟁상태에서의 부역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제하에서 조직의 생존을 위한 타협과 적극적 반민족행위는 구분해야 한다. 유신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우리 국민 대부분을 반(反)민주주의자로 처벌할 것인가. 한·일 교류 및 상호 의존이 구조화된 시대에 친일 청산을 내거는 건 시대착오적이자 국가 분열 행위다."

-오늘의 위기를 만든 보수의 책임도 크다.

“보수는 범속한 출세주의와 이념적 무력감에 빠져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에만 관심이 있을 뿐, 대한민국을 보수한다는 스스로의 입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번영의 과정을 그 역사적 실체에 충실하게 설명하는 역사의식을 계발해야 한다. 자기 나름의 체계적 사유와 논변을 갖추지 못한 건 보수나 진보나 마찬가지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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