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뜨거운 탕속에서 '시원하다'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뜨거운 탕 속에서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진은 온천광고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요즘은 보기 드문 광경이지만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열탕 속에 앉아 '어, 시원하다'는 소리를 내뱉는 어른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 때 '시원하다'는 말의 의미는 '피로가 쫙 풀린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요? 적당히 나이드신 분들은 사우나의 마력에 대해 잘 알고 계실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의 표면만 뜨겁고, 물 속은 뜨겁지 않다'고 '들어올 때만 잠깐 뜨겁고 물속에 들어오면 괜찮다'고 유혹하는데 이 말도 사실일까요?


인간의 몸에는 여러 감각기관이 있고, 그 감각기관은 다양한 수용체를 통해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신체의 온도 변화는 온도수용체가 반응해 그 자극을 뇌로 전달합니다. 인간의 피부에는 차가운 수용체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의 통로가 있고, 따뜻한 수용체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의 통로가 있습니다.


인간이 적당하다고 느끼는 물의 온도는 28~34℃ 정도인데, 물의 온도가 15℃ 이하이거나 42℃ 이상일 때는 고통을 느낍니다. 이 온도의 물과 접촉하자마자 문제가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신체에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 뇌에서 접촉하지 마라는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그 신호가 낮은 온도일 때는 차가움을, 뜨거운 온도일 때는 뜨거움으로 전달하는 것이지요. 즉, 물의 온도가 25℃ 이상일 때는 뜨거운 수용체를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의 통로가 열리고, 물의 온도가 15℃ 이하일 때는 차가운 수용체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의 통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신경세포의 통로가 열리면 세포 밖에 있는 나트륨 이온과 칼슘 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와 신경세포 내부의 전위가 바뀌면서 뇌에 전기신호를 전달합니다. 문제는 차가운 수용체가 보내는 신호가 따뜻한 수용체가 보내는 신호보다 10배 이상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따뜻한 수용체는 피부면 1㎠ 면적에 1~2개 정도 존재하고 피부 표면에서 약간 깊은 곳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반면, 차가운 수용체는 피부 표면 가까이 있으면서도 같은 면적에 13~15개 정도 존재합니다. 숫자도, 위치도 모두 차가운 수용체가 유리한 것입니다.


극한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을 느끼게 되면 혼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수용체들이 동시에 반응해, 동시에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차가운 수용체의 전달 속도가 따뜻한 수용체의 전달 속도보다 10배나 빠르니, '시원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의식중에 '어, 시원하다'란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역설적 차가움(Paradoxical cold)'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역설적 뜨거움(Paradoxical hot)'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상이 걸릴 만큼의 극한의 추위에서 피부가 느끼는 뜨거움이 바로 역설적 뜨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위로 인해 체온이 떨어지면 인체는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열손실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말초혈관을 수축시키면 에너지를 전달하기 힘들어집니다. 혈관을 통해 인체 곳곳에 에너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에너지 전달이 힘들어진 것이지요. 어쩔 수 없이 수축했던 말초혈관을 이완시키는데, 이 때 흐르지 않던 피가 갑자기 몰려오면서 인체가 더위를 느끼는 것입니다. 동사자들의 20~50%가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발견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물의 표면만 뜨겁고, 물 속은 뜨겁지 않다', '들어올 때만 잠깐 뜨겁고 물속에 들어오면 괜찮다'는 말은 어떨까요? 물은 온도가 올라가면 팽창하고 온도가 떨어지면 수축하는 만큼 물속이 물표면보다 뜨겁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목욕탕의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이면 뜨거운 물은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은 무거워서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큰 온도차는 아니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들어올 때만 잠깐 뜨겁고 물속에 들어오면 괜찮다'는 말은 뜨거움을 견딜 수 있는 개인의 인내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물은 4℃까지는 수축하지만 그보다 더 차가워지면 부피가 팽창하게 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이 정도 온도는 아주 차가운 물이기 때문에 아예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