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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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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佛, 마스크 수출 금지… 단합 깨지는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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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조치에 회원국 반발… 佛방송, 감염 많은 이탈리아 조롱

"EU 협력 무용지물" 비판 나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EU(유럽연합)가 흔들리고 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기치로 27개 회원국이 한 우산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 창궐로 회원국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27개 EU 회원국 보건부 장관들이 모였지만 공동 대응 방안을 도출하기는커녕 심각한 갈등만 노출했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 '마스크 충돌'이 빚어졌다.

독일 보건부는 지난 4일 마스크·의료용 장갑에 대해 독일 내 물량이 충분히 확보될 때까지 수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프랑스도 3일부터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며 시중에 풀린 마스크를 정부가 수거해 확진자 등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급하고 있다. 체코는 소독약 수출을 중단했다.

이 같은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다른 회원국들은 일제히 불만을 표출했다. 특히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독일·프랑스가 결정적 순간에 자국민 보호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이 거세다. 마기 드 블로크 벨기에 보건부 장관은 "연대해야 할 시점에 (마스크) 수출을 막는 나라는 EU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독일·프랑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솅겐조약'에 의해 국경 검문 없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한 코로나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그에 따른 신경전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프랑스의 한 방송사는 이탈리아 요리사로 분장한 코미디언이 피자를 만들며 기침하더니 초록색 침을 피자에 내뱉는 장면을 방송했다. 자막에 '코로나 피자'라는 말이 떴다. 이탈리아가 위생 관리를 엉터리로 해서 바이러스를 유럽에 확산시킨다는 풍자였다. 이탈리아인들은 격분했고,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나서서 "아무리 풍자여도 그렇지 너무 무례하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이 외에도 폴란드의 첫 확진자가 독일에서 바이러스를 얻어온 것으로 조사되는 등 자유로운 이동에 따른 바이러스 확산 사례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EU 본부 기능도 사실상 마비시켰다. 지난 5일 EU 사무국 직원 2명이 확진자로 판명된 것을 계기로 100개가 넘는 EU 집행위원회와 EU 의회의 행사가 무더기로 취소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직원 출장을 금지하고 외부인 방문도 막았다.

EU는 우한 코로나 외에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민자 유입이라는 악재가 겹쳐 분열이 가속화되는 중이다. EU는 터키에 머물던 시리아·북아프리카 난민들이 터키의 국경 개방을 계기로 그리스 국경을 넘어오려고 시도하자 이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2015년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가 이에 따른 거부감이 커지면서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고 EU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폴란드 등 극우 세력이 집권한 나라들은 더 많은 이민자가 들어오면 EU를 탈퇴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자 영국에선 브렉시트로 국경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은 잘한 선택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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