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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경향신문 '해외축구 돋보기'

[해외축구 돋보기]전쟁통에도 열렸는데…유럽 축구리그 올스톱, 팬도 선수도 ‘슬픈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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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5대 축구리그가 올스톱하면서 주말 축구가 사라졌다. 전쟁통에도 열렸던 축구장이 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완전히 닫아내린 것이다.

도르트문트 골잡이 홀란드는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치른 뒤 “관중 없는 경기장에서 뛰는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기이해졌다. 상황은 악화됐고, 무관중을 넘어 축구 자체가 멈춰 섰다.

네덜란드 문화학자인 요한 호이징가는 스타디움을 ‘마법의 원’이라고 불렀다. 이 마법의 원은 세상과 다른 특별한 법이 지배한다. 농축된 감정들을 마음껏 폭발시킬 수 있고, 외부에선 금기시되는 행동들이 허용되기도 한다.

축구팬들은 주말이면 마법의 원으로 달려가 본능적인 것의 천국을 즐기다가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오곤 했다. 마법의 원은 곧 정신적·감정적 해방구였다. 이 마법의 원이 닫히면서 농축된 감정들 역시 갈 곳을 잃었다. 마법의 원이 닫힌 세상은 그만큼 단조로워졌다. 골 하나하나에 숨 넘어갈 일도 없어졌고, 환희에 휩싸여 노래나 구호를 외칠 일도 없다. 스코어나 순위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여다볼 일도, 한밤중에 일어나 TV 앞에 앉을 이유도 없어졌다.

첼시 골잡이 아브라함이 직면한 세상도 그랬다. 그는 할 일 없어 지겨워하며 빈둥대는 꼬마의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지금의 나’라는 제목과 함께. 소셜미디어에선 축구 없는 일상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한지를 묘사하는 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리네커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어떨지 늘 궁금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그가 리그 중단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축구 없는 삶은 “쓰레기”였다. 풍선의 공기가 빠지듯 인생을 뜨겁게 만들었던 열정 하나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축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지금은 정상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있다.

팬들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선수들이다. 바이러스와도 싸워야 하고, 언제 리그가 재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몸을 최고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맨유의 포그바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아탈란타의 일리치치는 발렌시아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4골을 넣었던 매치볼을 베르가모병원에 기증했다.

축구 없는 주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슬프고, 공허하고,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도 지금은 참아야 한다.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마법의 원’을 다시 열 때까지. 레알 마드리드 라모스의 말처럼 지금은 “역경을 겪을 때 우리가 더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줄 시간”이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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