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버스 기사와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소동이 지역신문에 실리고, 급기야 전국망 TV 뉴스에도 나간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이 전투는 전국으로 번진다. 그 와중에 약삭빠른 사업가는 프린들 상표등록과 관련 상품 개발로 떼부자가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상황의 반전이 이 동화 <프린들 주세요>의 백미다.
다시 10년 뒤, 이번에는 닉이 영어교사가 돼서 6학년 조시와 전투를 벌인다.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고 작문은 손글씨로만 써내야 하는 수업방침에 분개한 조시는, 이름을 바꾼 덕에 오리무중인 닉의 행적을 캐내가며 <프린들 파일>을 만든다. 노트북 사용을 허용하면서 닉에게는 패색이 드리우지만, 전투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강력한 반전은 없으나 매회 홈런이 터지는 야구경기 같은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실제 영어교사이기도 했던 앤드루 클레멘츠는 ‘최고의 학교이야기 작가’로 불린다. 첫 책 <프린들 주세요>의 대성공 이후 20년 만에 나온 그의 마지막 작품 <프린들 파일>은 내게 모처럼 가슴 뛰는 독서였다. 마치 첫사랑과 재회한 듯, 여전히 활력 있으면서도 더 중후하고 멋있어진 나의 남자를 보는 듯했다고나 할까. 그는 여전히 언어의 힘을 믿으며, 그 힘에 의해 아이들은 성장하고 어른들은 깊어지며 세상은 변화하면서 나아져간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노라는 고백처럼 읽혀 어떤 설렘으로 충만했더랬다. 성장하는 아이, 깊어지는 어른. 이렇게 뿌듯하고 믿음직한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장르가 어린이책이다.
그런데, 성장이란 뭘까. 키 커짐, 힘세짐, 지식 쌓음 외에 어떤 개념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뿌리침’과 ‘치받음’을 떠올린다. 아기는 안락한 엄마의 자궁을 뿌리친 채 좁고 험한 산도를 기어이 헤쳐 나가 태어난다. 중력을 뿌리치고 두 발로 일어선다. 잡아주려는 손을 뿌리쳐가며 혼자 걷는다. 땅에 심긴 씨앗은 자기를 덮고 있는 흙을 치받아 올리며 싹을 틔운다. 알 속의 새는 껍데기를 깨부숴야 세상으로 나와 몸을 펼 수 있다. 많은 야생동물 무리의 젊은 수컷은 우두머리와 싸워 이겨야 자기 영토를 확보할 수 있다. 그들은 목숨 걸고 싸운다. 그것이 탄생이고, 성장이고, 독립이다.
그때 어른들의 역할은 뭘까. 그들은 뿌리쳐지고 치받혀야 한다. 산도를 헤집는 고통을 감내하고, 손을 뿌리치는 아이에 대한 서운함을 삼켜야 한다. 자신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에 의해 바스러져야 한다. 알껍데기처럼 갈라져야 한다. 젊은 수컷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절뚝이고 피 흘리며 떠나주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받아안을 만큼 깊어져야 한다. 그것 역시 목숨 건 싸움이며, 영광스러운 소멸이다.
그레인저 선생님은 닉과의 싸움이 한창일 때 편지를 써놓는다. 그리고 10년 뒤 ‘프린들’이 수록된 사전과 함께 보내며 열어보게 한다. 프린들을 살리기 위해 프린들과 싸우는 악역을 자처했노라는 편지를. 이 깊은 어른에 목이 멘다. 덕분에 닉도 그렇게 깊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레인저와 닉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멋진 어른들이 넘친다. 느긋하고 지긋하게 아이 뒤를 받쳐주는 부모. 길길이 뛰다가도 아이들 설명을 듣고 오해를 사과하는 교장. 약삭빠르게 장사를 하면서도 로열티를 챙겨주는 사장. 이런 동화를 어른들은 읽어야 한다. 아이만 책 읽고 자라라 하지 말고, 어른도 읽고 깊어져야 한다.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
김서정 어린이책 작가·평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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