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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N번방 방지법’은 왜 졸속 논란에 휘말렸나[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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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의 해결을 위해 헌신하는 단체로서 청원 내용이 매우 축소되어 소극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된 데 큰 유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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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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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지원단체인 ‘프로젝트 리셋’(ProjReSET)이 낸 보도자료 일부다. 리셋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만들어진 1호 법안(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의 최초 청원인이 속해 있는 단체다. 법안은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리셋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법 개정”이라며 반발했다. 27개 여성단체로 이루어진 한국여성단체연합도 11일 “N번방 방지법은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청원에 서명한) 10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던 국회 청원 1호 법안은 왜 졸속 처리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청원인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소위 ‘N번방’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단체방에서는 음란물에 여자 연예인과 지인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과 불법 촬영물이 수시로 유통 또는 판매됐다. 각 채널 구독자 수가 최소 수천명에 이른다. 한 단체방에서 얻은 영상이 다른 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음란물 사이트로 2·3차에 걸쳐 재유포되는 경우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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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드 대화방. 경향신문 자료사진


청원인이 제시한 요구사항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텔레그램 서버가 해외에 있는 탓에 성착취 영상 삭제나 경찰의 즉각적인 수사가 어렵다는 점에서 ‘경찰의 국제공조수사’를 요구했다. 두번째로는 피해자들이 처벌의 불확실성을 우려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에서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양형기준 재조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알려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디지털 성착취물의 한 유형에 불과한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데 그쳤다.*¹



*¹)[기사]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딥페이크 처벌법 만든 고위공직자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반포할 목적이 아니어도 딥페이크로 (피해자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의가 제기됐지만 참석자 다수는 회의적이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냐”(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

‘리셋’에 따르면 텔레그램에는 ‘지인 제보 능욕방’이란 유형의 대화방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지인 사진을 올리면 ‘방장’이 음란물과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해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이때 의뢰자는 사진이나 영상을 직접 제작해 유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딥페이크 영상은 수백명이 모여있는 단체방에서 피해자 신상과 함께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유포와 재유포를 하나하나 처벌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디지털 성착취물은 소비 자체에 피해자에 대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상물 제작을 개인의 표현의 자유로 무한정 인정할 수 없다”며 제작 목적에 상관없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은 30일 이내 10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국회의원의 소개 없이도 국회의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1월 신설됐다. 법률 비전문가가 쓴 청원 취지를 살려 법안 형태로 가공하는 것은 소관 상임위 전문위원들의 역할이다. 국회의원들의 논의를 돕기 위해 자료 조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각 당 간사 의원들은 상임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기 전 심사자료를 토대로 안건과 일정을 조정한다.

해당 청원은 지난 11일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심사자료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자’는 취지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 발의안’ 4건과 청원을 병합했다. 3일 법사위 법안심사 회의에서도 딥페이크 처벌 규정만 논의됐다. 청원인 요구사항에 대한 언급도, 딥페이크 관련 법과 병합하는 이유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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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안내하는 포스터. 출처 : twitter.com/nbu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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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청원을 심사한 권태현 법사위 전문위원은 현실적 한계를 이야기했다. 그는 “청원과 딥페이크 처벌법의 관련성이 밀접하다고 볼 순 없다”면서도 “국제 수사공조나 수사기관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등은 국회 입법이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에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이 있는 법안을 찾아 병합 처리하게 됐다”고 했다. “청원 취지를 살려 발의안을 새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20대 국회 회기 내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딥페이크 처벌 규정이라도 마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현실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입법자들의 의지다. 하지만 국회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은 ‘N번방 사건’이나 ‘딥페이크 영상’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법안을 논의했다. 3일 법안 심사에 참여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안 취지를 설명하며 “이것(딥페이크 영상)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것은 저도 잘은 모른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딥페이크 영상을 ‘음란물’로 표현하거나 “기존 법률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지 않느냐”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법사위는 지난 4일 국회 청원을 본회의에 올리지 않고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에 딥페이크 처벌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청원 취지가 반영됐다”는 이유다. 하지만 딥페이크 처벌 규정 신설만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N번방 유력 피의자는 구속*²됐지만 여성들을 협박하고 성착취물 제작과 성관계까지 강요하는 범죄는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²)[기사]‘텔레그램 n번방 박사’ 구속…“왜곡된 성문화 조장, 사안 엄중”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수십명의 여성을 협박·강요해 음란물(불법촬영물)을 제작하고 이를 유포해 막대한 이득을 취득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했을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엄중하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또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고지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다”며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되고 증거인멸·도주 우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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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조모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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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가상화폐·공익요원 이용해 치밀한 범행…미성년자 등 피해자 74명

‘박사’는 누구나 불법촬영물을 볼 수 있는 ‘맛보기’ 대화방과 일정 금액의 가상화폐를 지급하면 입장 가능한 ‘3단계 유료’ 대화방을 운영했다. 3단계 유료 대화방에서는 입장 금액에 따라 성착취 불법촬영물의 범위가 달라진다. 경찰에 따르면 1단계 대화방은 20~25만원, 2단계는 약 70만원, 3단계는 약 150만원을 내야 입장 가능하다. ‘박사’는 이곳에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판매해 억대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이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총 74명이며, 피의자 주거지에서 현금 약 1억3000만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기존 법과 제도가 디지털 성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가해자들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고발해도 애플리케이션(앱)은 물리적인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다. 기존 법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여러 갈래로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어떤 플랫폼이냐에 상관없이 디지털 성범죄를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완전히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³고 했다.



*³)[기사] ‘텔레그램 n번방’ 성범죄, 이번엔 ‘디스코드’서 버젓이 활개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유사한 성범죄가 또 다른 온라인 메신저인 ‘디스코드’(DISCORD)에서도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피의자들이 디스코드로 옮겨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은 디스코드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용자 2000여명이 이 서버에서 불법촬영물을 버젓이 공유·판매·구매했다. 이용자들은 “초·중·고딩 영상 800개 이상 있는 파일을 판다” “스튜어디스 몰카(불법촬영물) 있다. 싸게 판다”며 다른 이용자들을 유인했다. “06·07년생 영상을 판다”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도 판매됐다.



이하영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응위원회 활동가도 “형법상 협박죄가 존재하긴 하지만 실제 성착취물을 유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고를 하더라도 낮은 처벌을 받는다”며 “텔레그램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다. 이들이 있기에 성착취 피해자들의 피해가 가중되지만 공모자들에 대한 책임은 전혀 묻지 않는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이보라 기자 purpl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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