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국내 최초로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며 한복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사용한 고인은 국내에 한복 붐을 일으키고 외국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193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어려운 살림에 바느질을 시작해 작은 한복집을 열었다. 이후 천재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현대 한복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장인이 됐다.
1966년 이리자 한복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1970년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는 '이리자식 한복패턴'을 개발해 보급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미스유니스버대회 등 세계 미인대회에서 최우수 민속 의상상을 받았다.
미국, 일본, 중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100회가 넘는 한복 패션쇼를 개최했고, 프랑스 프레타 포르테에도 초청받았다.
고인은 색동, 금박, 자수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활용해 한복의 패션화를 이끌었다. 홍석창, 김금출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매화, 목련 등의 그림과 안광석 등 서예가의 글씨도 한복에 활용했다.
한복 발전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화관문화훈장과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각천을 활용한 한복 디자인을 유행시켰다. 2000년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 작은 조각천을 이어붙여 옷을 만들었다.
빈소는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3일 오전 10시, 장지는 용인 평온의숲이다.
유족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조문을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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