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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기고]‘금소법’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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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발의된 지 9년 만에 이달 초 국회를 통과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 등이 누락돼 아쉬운 점도 있지만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법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은 권역별 금융상품 판매에 관한 준칙을 통합적으로 구체화하고, 손해배상 입증 책임의 전환, 징벌적 과징금, 판매 제한 명령권 등을 반영했다.

경향신문

매번 불발되던 금소법이 통과된 것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따른 사회적 관심과 여론의 영향이 컸다. 과거에도 우리 사회는 저축은행 후순위채, 키코(KIKO) 파생상품,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와 같은 문제들을 경험했다. 그러나 경각심은 한시적이고 필요한 제도를 적시에 정비하는 데 미흡했다.

금융시장의 기본 주체는 금융소비자와 금융기관이다. 금융거래는 금융상품을 매개로 하는데, 금융소비자는 금융상품의 수요자이고 금융기관은 공급자이다. 이에 더해 금융시장이 온전히 기능하려면 정책과 규제, 예금자 보호 등 공적기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 총체적인 체계를 금융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금융기관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해도 공적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금융업을 영위하는 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필요한 것은 일반 금융소비자의 경우 자신의 거래 상대방인 금융기관에 비해 정보나 협상력 등의 측면에서 열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소비자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다.

2010년 7월 당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소비자보호국(CFPB·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 설립의 근거가 된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소비자보호법’에 서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번 개혁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상징합니다. 이 개혁은 금융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간 권력남용과 무절제 근절을 위해 고삐를 단단히 죌 것입니다.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데 일조한 복잡하고 위험했던 거래가 투명해질 것입니다. 법에 따라 미국인은 결코 다시는 월스트리트의 실수로 발생한 청구서에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미국 CFPB는 현행법이 부여한 독립적이고 강한 집행권한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위법 부당한 행위를 제재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한 사회의 제도는 규범성을 띠고 고유한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쉽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고 어떤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금융감독의 경우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감독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지만 한국의 금융감독기구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해 대응하고 있다. 금소법이 제정된 만큼 금융제도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필요한 제도 개선을 이룬다면 금융시장 발전의 든든한 초석이 될 것이다. 규제완화라는 흐름에 무분별하게 휩쓸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철 |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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