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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노래의 탄생]조영남 ‘화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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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도에서 꽃소식이 상경할 때면 화개장터부터 떠오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에 있는 이 장터는 지금쯤 꽃이 지천일 게다. 이곳부터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에서 열리는 봄축제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1980년대 후반쯤이다. 조영남은 윤여정과 이혼하고 서울 흑석동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때 김한길이 미국에서 왔다. 장래가 촉망되는 소설가였던 그는 이어령 선생의 사위였지만 이혼과 함께 귀국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던 그는 잠시 조영남의 아파트에 얹혀살았다. 두 중년의 백수는 어느 날 신문기사를 놓고 마주 앉았다. 경향신문 1987년 10월27일자에 실린 화개장터가 지역갈등의 해방구임을 보여주는 르포기사였다. 기사 속에서 한 구례 주민은 “먹고살아가는디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신 상관 있당가요? 괜시리 우리랑 관계없는 사람들이 지방색을 들먹거려 화가 치민당께요”라고 반문한다.

소설가인 김한길은 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노랫말을 썼고, 조영남은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를 붙여 완성했다. 아직도 여전히 지역갈등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 노래로 인해 화개장터는 유명해졌다. 조영남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조영남 작사·작곡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바로잡아 김한길도 저작권료를 받는다. 재미있는 건 조영남은 노래를 발표할 때까지 화개장터에 가본 일이 없었다. 지금은 화개장터에 조영남갤러리도 있지만 말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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