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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역대 최다 청원…“n번방 관전자도 ‘공범자들’” 들끓는 처벌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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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악순환 끊자” 공감대]

박사 등 신상공개 청원 ‘역대 최다’

착취 가담 가입자 전원 처벌 목소리

돈 내고 게임 보듯 관전…“n번방 입장만으로도 범죄”

핵심 운영자 ‘박사’ 향한 분노 n번방 가입자 전원에게로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 낮아

SNS엔 여전히 “영상 풉니다” 글

“관전자들도 공범 수준 처벌

짧은 기간이라도 실형 선고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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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 관련자 ‘박사’ 조아무개씨 등을 향한 분노가 끓는점을 넘었다. 이들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는 나흘 만에 200만명에 육박하며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분노는 이들을 넘어 엔번방의 회원인 ‘관전자’들로도 향하고 있다. 돈을 내고 게임 구경하듯 박사 일당이 여성들을 착취·학대하는 현장을 지켜본 관전자들은 수만에서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지난 18일 올라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청원은 저녁 8시30분 기준 199만3036명의 동의를 받았다. “어린 학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달라”는 요구였다. 뒤이어 20일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 역시 이틀 만에 134만1170명의 동의를 얻으며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경찰은 24일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엔 디지털성범죄를 ‘솜방망이 처벌’해온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녹아 있다. 관전자 전원 신상공개를 촉구한 청원자는 “흥분하고, 동조한 가입자 모두 성범죄자다. 소름이 끼치지만 저희에겐 방법이 없다. 처벌하지 않을 거라면 그들의 신상이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소라넷’에서 ‘웹하드’로, ‘다크웹’(특수한 웹브라우저를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웹)으로, 다시 텔레그램으로, 수사의 덫이 좁혀올 때마다 성착취물 유포자들은 무대를 옮겨갔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성폭력 관련 범죄들은 대개 잠시 관심을 받다 ‘용두사미’ 격으로 마무리됐다. 여성들의 분노엔 이 관전자들까지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 결국 플랫폼을 옮겨 거듭돼온 디지털성범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장임다혜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실제 처벌은 수위가 낮고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는 신체적인 범죄보다 더 중할 수도 있는데 사법체계에선 덜 중요한 피해로 보고 있어 그런 관행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 ‘미투 운동’의 불을 댕겼던 서지현 검사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베, 소라넷 등에서 유사범죄들이 자행됐지만, 누가 제대로 처벌받았나. 사실 이건 너무나 ‘예견된 범죄’였다”고 짚었다. 실제로 과거 웹하드로 90만건 넘는 불법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웹하드 업체 관계자마저 집행유예 처분에 그쳤다.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털어 협박·착취하고 텔레그램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다수가 모여 공유한 범행 방식도 불안과 분노를 자아냈다. 국민청원에 동의한 직장인 이아무개(32)씨는 “이번 사건을 보며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닫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두렵다. 워낙 가해자가 많다보니 내 직장동료도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하면 분노가 커진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디지털성범죄는 시공간의 한계가 없어 파괴력이 크고 파생범죄가 일어나기 쉽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박사’ 조씨는 아동·청소년 관련 성착취물을 ‘제작’했다는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성단체와 법조계에선 이에 더해 엔번방에 돈을 내고 가입한 관전자들도 ‘공범’ 수준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아동·청소년 관련 성착취물도 공유된 만큼 그나마 가장 형량이 강력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는 “그 방(n번방)이 뭔지 알고 들어갔고, 호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퇴장도 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범죄를 꾸민 공범이다. 이 방에 입장한 것만으로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임을 알고도 소지한 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박사는 붙잡혔지만 엔번방의 착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날도 트위터에는 “n번방 영상 푸는 계정” 등의 글이 올라왔고, 포털과 에스엔에스에는 “n번방 처벌 회피해드린다(회피 도와준다)”는 등의 글이 잇따랐다. 여전히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고 보는 가담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선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1년 이하 단기 실형이라도 받게 된다면 당사자로선 교도소에 갇히고 직장을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줄 수 있다. 사회적으론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광준 권지담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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