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작가 박정민과 친구 곽지훈 대표가 차린 책방
수다·노트북보다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
커피 컵받침 뒤엔 박정민이 책에 줄친 글귀들
책장엔 추천도서와 '동주'·'시동' 등 출연작 관련 책들도
구매서적 맡겨두고 보는 '키핑 도서' 공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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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배우가 차린 카페. 이렇게만 소개하더라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법 하다. 쉽게 주목받는 직업군 중 하나가 배우이고, 그가 직접 카페를 운영한다고 하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또다른 '직업'은 작가. 4년 전 '쓸 만한 인간'이란 산문집을 출간한 적이 있어서다. 배우이자 작가가 카페를 차려 운영까지 한다니 더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책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 박정민이 낸 카페 '책과 밤낮' 얘기다. 지난 22일, 일요일 오후 이곳을 찾았다. 배우이자 작가, 동시에 카페지기인 박 대표의 정성이 깃들인 카페는 팬들은 물론 책을 좋아하는 인스타그래머들 사이에 이미 꽤 유명한 곳이다. 문을 연 지 한 시간도 채 안된 시간에 거의 만석이었다.
주소로는 마포구 합정동에 속하지만 상수역과 가까운 카페는 4층짜리 건물의 2층에 자리한다.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책상과 2인용 테이블 두어 개, 창가에 놓인 3인석 테이블에 자리마다 비치된 테이블 스탠드까지, 카페보다는 도서관이 연상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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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과 닮은 이유를 찾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박 대표와 그의 20년 지기 친구 곽지훈 대표가 '책과 밤낮'을 오픈하면서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곳'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당초 카페는 10평 남짓한 가정집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난해 3월 두 사람은 밤에 문을 여는 책방이라는 개념으로 '책과 밤' 카페를 열었다. 곽 대표는 "박정민은 늘 '책 읽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은 충동적으로 그 꿈을 실행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데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고, 평소 박 대표가 즐겨 찾던 동네인 이곳에 '책과 밤낮'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새롭게 마련했다.
카페 이름에 크게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밤에 운영했던 예전 카페가 '책과 밤'이었다면, 지금은 밤낮으로 문을 연다 하여 '책과 밤낮'이다. 오후 2시 문을 열어 자정이 돼서야 문을 닫는 심야 책방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곽 대표는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 시대에 독서를 장려하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밤에 동네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그들만의 확고한 철학 때문인지 취재차 영상 촬영이 필요하다고 하자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긴하게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손님으로서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달 전 구매해둔 소설책 한 권을 챙겨 방문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전체 분위기는 아늑한 책방이라는 느낌을 줬다. 카페에서 흔히 마주치는 노트북 이용자들의 타닥거리는 소리나 일행과 함께 열중하는 수다 삼매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두가 독서에 빠져있어서다. 책을 파는 카페가 아니라, 음료를 파는 책방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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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에서 주문한 커피는 '책과 밤낮'이라 적힌 컵 받침과 함께 자리로 배달됐다. '뒷면을 보세요'라는 문구에 컵 받침을 뒤로 돌려보니 책의 한 구절과 함께 책의 제목이 쓰여 있다. 판매하는 책 중 하나다. 해당 도서를 구매하면 10% 할인된다는 문구도 덧붙여 있다. 곽 대표는 "친구(박 대표)가 생각해낸 것"이라며 "친구가 평소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글귀에 줄을 치며 읽는데, 그 글귀들을 컵 받침에 써넣었다"고 소개했다.
입구 왼편에 있는 책장에는 시집, 소설책 등 판매 중인 도서들이 나열돼 있다. 판매하는 책은 상하지 않도록 포장지로 싸여있고, 미리 읽어볼 수 있는 책은 따로 갖춰놔 부담 없이 책을 볼 수 있다. 판매하는 책들이 많지는 않지만 박 대표가 소개하고 싶은 책들로 책장을 꾸몄다. 한쪽에는 '책 메뉴판'도 보인다. 고르고 골라 전시해 놓은 책 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다. 책장 중앙에는 배우 박정민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가 출연한 작품 '동주', '시동' 등과 관련된 서적들이 배치돼 있고, 그의 사진과 팬들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방명록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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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오른쪽으로는 특이하게도 헌책들이 꽂혀 있다. 자세히 보니 칸마다 이름과 날짜가 메모돼 있다. 많게는 3권, 4권까지 꽂혀있는 이 책장의 정체는 바로 '키핑 도서'. 책과 밤낮에서 구매한 서적들은 이곳에 맡겨두고 언제든 와서 다시 볼 수 있다. '읽으셔도 됩니다'라는 책 주인의 메모지가 붙어있는 도서는 방문객 누구든 자유롭게 꺼내 볼 수 있다. 곽 대표는 "원래 이곳이 LP바로 운영되던 곳이었는데 LP 보관함을 책장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활용할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라며 "책을 키핑하는 방식이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카페에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다. 그럼에도 곽 대표는 "특별할 게 없다"고 말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래도록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몇 시간 동안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어서, 심지어 책을 맡겨놓고 언제든 누구라도 꺼내볼 수 있도록 주인과 손님의 공동 배려가 녹아있어서, '책과 밤낮'만의 특별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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