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동남아는 어떻게 세계의 ‘핫스팟’이 되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만달라 체제와 인도화 등 본격 연구 국내 첫 ‘동남아 통사’

국가생존 도약 위한 필수전략으로서 남방외교 이해에 도움


한겨레

동남아시아사: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소병국 지음/책과함께·3만8000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여행 애호가들에게도 필수 관광지가 된 캄보디아의 유적지 앙코르와트(사진)는 동남아 역사의 안팎을 드러낸다.

100만명을 부양하는 거대한 규모의 정교한 건축들은 1천년 전에 이곳에 ‘제국’ 규모의 국가 체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남아에서도 중국, 유럽, 중동에서처럼 거대한 국가 체제가 존재해왔음을 드러낸다. 흔히 ‘크메르 제국’이라고 불리는 앙코르는 전성기 때에 남부 베트남, 타이, 북부 말레이반도까지가 영역이었으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제국은 아니었다.

통치세력의 지배가 영역 내에서 거의 전일적으로 관철되는 기존 제국과는 달리, 앙코르는 앙코로와트나 앙코르톰 같은 수도에 해당하는 핵심 영역과 나머지 영역은 후견-피후견 관계로 맺어졌다. 중화체제의 조공국 같은 제국 내의 봉국 비슷한 관계로 볼 수도 있겠으나, 앙코르 내의 후견-피후견 국가 관계는 명분과 구속력에서 그보다는 훨씬 느슨하고, 피후견국의 자율성이 컸다. 또 수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역이 피후견 관계로 엮여 있었다.

따라서 앙코르의 부침도 기존 제국과는 달랐다. 외부 세력의 침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송·원과의 교역이 커지면서 해상무역로에 근접한 프놈펜 지역으로 관심을 기울여 내륙인 앙코르를 포기했다. 이렇게 버려진 앙코르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고고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잊혔다. 그 건축물에서 보듯 앙코르는 힌두 문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제국적인 관료 체제는 중국 문명의 영향이다. 또, 앙코르가 역사와 대중에 다시 소환된 것은 유럽의 서세동점이었다.

국내에서 나온 첫 본격적인 동남아 통사인 소병국 외대 말레이·인니어과 교수의 <동남아시아사: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는 앙코르가 말하는 이 역사들을 교직한다. 즉, 중국이나 유럽 등에서 계서와 영토 개념이 비교적 분명한 국가 체제와 달리, 중심 세력과 주변 세력들이 후견-피후견 관계를 바탕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만달라 형태’ 구조의 국가 체제, 인도화와 중국화, 그리고 1500년대 이후 유럽 세력의 도래로 이어지는 동남아를 전체적으로 조명한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남아’라는 용어는 19세기 중반 미국 목사 하워드 맬컴의 여행기에서 처음 등장한다. 2차대전 때 일본이 동남아를 점령하자 연합군이 스리랑카에 동남아사령부를 세우면서, 동남아라는 용어는 대중화하고 독자적 지역 단위로 인식됐다. 만달라 체제, 중국화, 인도화, 유럽 세력 도래가 어우러져, 동남아라는 독자적 단위가 형성됐음을 책은 전하려 한다. 기존에 국내에서 나온 동남아 역사 관련서들이 각국의 왕조사 중심인 것과 대비된다.

현재 미국-중국 대결의 최대 핫스팟인 남중국해 분쟁 역시 이런 역사의 산물임이 책을 읽다보면 도출된다. 중국 남부에서 내려온 주민들이 선주민들을 내몰고 동남아 대부분의 주민을 이루면서, 지금까지 진행되는 중국으로부터의 압력과 영향은 남중국해 등 동남아를 인구·경제·문화·정치에서 중국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16세기 이후 유럽의 도래와 패권 확립은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대결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만달라 체제와 인도화라는 동남아 내부의 원심력은 동남아를 미-중 대결의 핫스팟으로 촉진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이 최근 내세운 남방외교의 주요 대상이 동남아이다. 남방외교는 단순한 외교다변화라는 뻔한 외교적 수사가 될 수 없다. 노태우 정부 시절의 북방외교만큼이나 우리 국가의 생존과 도약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동북아 중심의 4강대립 지정학에서 탈출해야만 국가의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북펀드 프로젝트에서 이 책이 펀딩 금액에서 2천만원을 넘어 4위를 했다. 동남아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성을 인식하는 집단지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연속보도] n번방 성착취 파문
▶신문 구독신청▶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