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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시인의 마을] 우츠보라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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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보라



박 은 정

너의 이름은 우츠보라. 절름발이 감정으로 겨울을 나는 작고 풍요로운 야생. 세월이 가도 추위는 끝나지 않고 너는 눈보라 속에서 검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눈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기다리는 우츠보라. 머리칼에서 자꾸 바람이 떨어지고 있어. 왼쪽의 죽음이 오른쪽은 아니라고 위로하는 자들의 뺨이 초라하게 빛날 때. 부질없는 진실을 말하듯 너의 이름을 부르는 메아리들. 이제 그만 손톱에 힘을 빼. 할퀼 수 있었다면 이미 뼈마디가 드러나도록 할퀴고 이곳을 떠났겠지. 눈보라는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듯 끝없이 흩어지고.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내 발밑으로 밀려온다. 독한 술을 줄까 독한 담배를 줄까. 우리는 꺼진 땅 위에서 자꾸만 부끄러워지고 너의 흰 운동화는 검고 갈 곳이 없는데. 이 걸음을 저쪽으로 옮기면 웃을 수 있을까. 우츠보라는 늙어 버린 표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이상하게 말한다. 기어이 살아야겠다고 사랑을 했는데 이미 죽어 버린 사람처럼. 시니컬한 너의 목소리가 눈보라와 함께 녹아내리는 밤. 우리는 단지 마음이 물컹해서 배를 움켜쥘 뿐인데. 괜찮아,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밤이래도. 이제는 벌레의 안간힘만 남은 우츠보라의 눈에서 저편의 내가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시집 <밤과 꿈의 뉘앙스>(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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