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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보여주던 ‘골프장의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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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맨더 인 치트: 골프, 사기꾼 트럼프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

릭 라일리 지음, 김양희 옮김/생각의 힘·1만8000원

세계시민들에게 제45대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정신세계는 3년이 넘도록 아직도 여전히 숱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왔다. “우리 둘만 있게 되자,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도널드, 왜 저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거죠?’ 그는 답했다. ‘그러는 편이 나으니까요.’ (…) <골프 다이제스트>에 등재된 트럼프의 챔피언십 우승목록 18개 중 16번은 거짓말, 두 번은 불확실, 확인된 사실은 0번…. 이쯤 되면 트럼프의 코는 피노키오처럼 길어져서 코로 퍼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청신한 바람과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짙푸른 초록빛 잔디 ‘그린’ 위에서 작은 골프공의 위치를 몰래 슬쩍 바꿔치기하고, 아까 드라이버 샷을 날렸던 공이 모래벙커에 빠져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도 자기 바지주머니에서 다른 공을 꺼내 잔디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축구왕 펠레처럼 공을 발로 차 퍼팅 샷을 치기 좋은 위치로 보내는 속임수를 남들이 보는 앞에서조차 밥 먹듯 쓰는 ‘골퍼’. “어쩌면 그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누군가 항의하면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곧이어 더한 속임수를 썼다. 경기 중에 그가 저지르는 부정행위는 전설에 가까운데, 경기가 끝난 후의 부정행위는 더 가관이다. 만약 그가 낮에 77타를 쳤다면 집으로 가는 중에는 75타가 되고 저녁 식사 때는 72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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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록스타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 기자”라는 논평을 받기도 한, 30년 가까이 골프장에서 트럼프를 알고 지내온 ‘평생 골퍼’다. 그는 말한다. “골프는 마치 자전거를 탈 때 입는,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처럼 한 남자에 관해 많은 것을 드러낸다.” 트럼프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으면, 함께 골프를 쳐라.”

350여쪽에 담긴 ‘트럼프의 골프세계’에 얽힌 저 수많은 일화·사건을 집약하자면,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를 가졌고 보통은 가장 최근의 아내를 데리고 다니는 동쪽 해안의 재벌”이 되기 전에도 “늘 쉴새없이 떠벌리기 좋아하고 수다스러웠던 잘생긴 청년” 시절부터 방금 전에 했던 말도 태연히 뒤집고 돌고 도는 거짓말과 허풍을 곡예하듯 끊임없이 해대고 기질적으로 타고난 사기꾼처럼 속임수를 써대면서 그 많은 좋은 사람들을 모욕해온 한 남자, 자신의 생에 걸쳐 ‘윤리학’이란 단어가 가장 낯선, 백악관에 앉아 있는 우스꽝스럽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트럼프가 수십년간 들락거렸던 숱한 골프장들의 안팎, 즉 17개 트럼프 소유·운영 골프장의 경영자들부터 캐디 및 직원들 그리고 (대통령 이전의)트럼프와 골프를 친 파트너들(골프 회원들, 타이거 우즈·아널드 파머를 비롯한 유명 골퍼들, 유명 배우, 정치인, 사업가, 기자 들…)이 도무지 헤아리기 벅찰 정도의 숫자(목격자이자 취재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보도 종사자’답게 트럼프 워싱턴골프장의 해병대 출신 캐디 ‘A.J.’만 오직 익명일 뿐 등장인물 모두 자기 실명을 명기하고 더구나 정확한 코멘트를 달고서 ‘사기꾼·거짓말쟁이 트럼프 행적’에 대한 제각각의 일화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술회하고 평가한다(물론 노여움과 분노가 섞여 있다). 재치있고 정제된 비유와 익살을 동반한 발랄한 필치는 골프샷처럼 시원스럽고 경쾌하다. 우리말의 입담을 매끈하게 살려낸 빼어난 번역 솜씨도 한몫 거든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는 늘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할까? 이유는 의외로 싱겁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이거든요.”(랜스 도즈 하버드대 정신의학박사)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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