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장강명의 벽돌책] 독재 막겠다던 키케로, 왜 실패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조선일보

장강명 소설가


다른출판사의 김한청 대표는 번역서 출간을 기획할 때 ‘독자를 딱 한 명 꼽는다면 누가 좋을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가, 그가 책을 재미있어할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의 720쪽짜리 저작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를 펴낼 때 그 질문의 답은 대통령이었다. 이후의 확장 독자로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로마는…'을 다시 펼치니 새삼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를 소재로 한 다른 인문 교양서나 영상물처럼 이 책도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시작되는 시기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런데 흔히들 주인공으로 삼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키케로와 아우구스투스에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이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독재자의 등장을 막고 공화제를 지키겠다는 키케로의 목표는 왜 실패했는가? 어떤 판단이 문제였고, 어떤 약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우리 시대 정치인들이 새겨들으면 좋겠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으로 로마를 장악했나? 어떤 가면과 술수가 먹혀들었나? 조직을 이끄는 운영자들이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조선일보

한편 저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이런 관성 어린 시도 자체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로마는 놀랄 정도로 현대적인 면모를 갖췄지만, 동시에 현대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야만적 관습과 사고방식이 있었던 낯선 땅이기도 하다. '로마에 관한 한 편의 이야기 같은 것은 없으며', 로마인들 역시 로마의 정체를 혼란스럽게 여겼다.

책은 후대의 신화화를 걷어내고 매력적인 이국(異國) 로마와 그곳 사람들을 새롭게 보여준다. 이용하는 자료는 시, 편지, 연설문부터 법안과 장부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이 직접 남긴 풍부한 기록이다. 정치인이나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교양 독자에겐 그런 이유로 충분히 즐거울 책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가 왜 현역 로마 연구자 가운데 가장 독창성이 돋보이는 인물로 꼽히는지, 왜 BBC방송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는지도 알 것 같다.

[장강명 소설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