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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유럽서 돌아온 펜싱팀 바로 입촌했더라면…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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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용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장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금지하다 올림픽 연기로 선수촌 3주 문 닫아

"청정 환경서 다시 선수들 맞을 것"

"선수들만큼이나 저도 허탈하네요…. 하지만 국가대표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어야죠. 당분간 훈련을 중단하지만 선수들을 믿습니다."

신치용(65)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장의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최근 몇 달간 2020 도쿄올림픽의 정상 개최 여부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사람 중 한 명이 신 촌장이었다. 올림픽이란 목표 아래 열심히 준비하는 선수들을 보살피는 총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올림픽의 내년 연기가 확정된 이후 곧바로 28일부터 3주 동안 선수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1966년 개촌한 태릉선수촌 시절부터 따져도 1년 365일 풀 가동해 온 국가대표 선수촌에 불이 꺼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수들이나 지원 인력이나 모든 사이클을 7월 24일 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왔어요. '도쿄 프로젝트'가 원점으로 돌아간 이상 당장 훈련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지요. 지금은 훈련보다 휴식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조선일보

27일 신치용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장이 선수들이 모두 떠난 선수촌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진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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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촌장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눌렀던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신 촌장은 "선수단 500여 명과 협력사 직원 200명 등 700여 명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단 1명의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찔한 순간이 없지 않았다. "유럽에서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펜싱 선수단이 곧바로 입촌하겠다는 뜻을 밝혔어요. 하지만 2주 동안 상태를 본 다음 이상 없으면 들어오라고 했죠." 펜싱 대표팀에선 지난 18~19일 세 선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루는 택배 주문한 통닭과 족발을 먹은 유도 선수 두 명이 오전 1시 30분 복통을 호소하며 열이 38도까지 오르는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다. 119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후송한 뒤 청주대병원 코로나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신 촌장은 "이들은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새벽 6시 30분 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신 촌장은 코로나가 더 확산 기미를 보이자 지난 17일부턴 선수들의 외출·외박을 금지했고, 지난주부터는 아예 면회조차 막았다. 그러자 선수들 의견 청취함에는 매일 "미치겠습니다" "제발 외출·외박 좀 허용해주세요"라는 원망 섞인 글들이 쇄도했다. 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선수나 지도자가 상(喪)을 당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지난 4일 배상일 여자 유도 국가대표 감독이 부친상을 당했는데 대표선수들이 아무도 못 갔어요. 저도 선수촌에 있어야 하니 조문도 못했죠. 가족이 수술한다고 해도 선수를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일단 선수촌을 떠나면 2주 격리 조치를 해야 하니까요."

신 촌장은 27일 선수촌을 떠나는 선수들에게 네 몸은 네가 챙기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그는 "태릉선수촌의 5배 넘는 159만 4870㎡의 거대한 선수촌에 함성 대신 적막감이 흐르니 어색하다"며 "3주 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청정한 환경에서 다시 선수들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두 달 동안의 '선수촌 격리' 생활을 잠시 멈추고 경기 용인 집으로 간다. "두 달 동안 속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어요. 일과 마치고 손녀와 영상통화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2~3주 동안은 손녀들 얼굴 좀 자주 볼 수 있겠네요. 허허."





[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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