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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건축사무소 문턱 낮춘 이 남자… “소통하며 만드니 ‘멋진 작품’ 나오죠”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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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신아키텍츠’ 대표 / 10년 전 종로 북촌에 건축사무소 창업 / 골목길 오가는 주민들과 진솔한 대화 / 집에 대한 궁금증 풀어주자 입소문 나 / 주민들 마음 읽으니 공공건축도 관심 / 창의력 더해지니 골목길도 새 명소로 / 프랑스 유학시절 만난 아내와 ‘동업’ / 지향점이 같아 눈빛만 봐도 척 알아 / 생각 못한 점도 보완해주는 ‘파트너’ / 독립된 건물보다 도시와 조화 중시 / ‘서울로 2단계 길’도 시민 의견 수렴

세계일보

건물이나 집을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 중 여전히 설계비를 아까워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건축가를 만나 평소 짓고 싶은 집을 얘기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작은 단독주택 짓는데 굳이 건축사를 만날 필요가 있냐고 한다. 건축가는 박물관이나 공항 등 대형건축물을 설계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존재한다. 건축가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전문가의 식견이 더해서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건축사무소 ‘신아키텍츠’의 신호섭 대표는 소통을 통해 건물을 짓는 건축가다. 건축을 할 계획을 갖고 있거나 건축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건축사무소를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데 앞장서고 있다. 건축가와 일반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괴리감을 좁히기 위한 일이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 대표는 수년째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라는 건축 강의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건축가, 그는 누구인가?’ 등 다양한 강의 주제를 통해 미화되지 않은 현실 속 건축가의 모습을 보여 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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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7017 2단계 연결길 조성 작업에 한창인 신호섭 대표는 23일 "서울의 멋진 골목길을 만드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 내는 데 힘쓴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건축가 신호섭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신아키텍츠에서 지난 23일 만났다. 그는 창업 10주년을 기념해 전 직원이 오는 5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참관할 계획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전 직원이 모처럼 해외에 나가 건축 트렌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의 피해자가 됐어요. 어떻게 직원들을 위로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 대표는 국내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마른나발레 국립건축학교를 졸업했다. 프랑스 국가공인건축사와 국내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진 건축가다. 10년 전 프랑스에서 귀국해 건축사무소 문을 연 신 대표는 아내 신경미 소장과 부부 건축사로 활동한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 만난 신 소장은 남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 보완해준다. 세상에 둘도 없는 파트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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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비행기 표를 끊어 유럽여행을 갔다가 프랑스 파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침저녁으로 센강변을 걸으며 유서 깊은 건축물과 현대 건물이 조화를 이뤄 보여주는 독특한 풍경이 그를 사로잡았다. 센강변을 비롯한 파리에서 걷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건축공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적인 환경에 만족하는 파리지앵의 모습이 파릇파릇한 건축학도를 파리로 이끌었다.

유학 시절 하나의 독립된 건축물을 짓는 것보다 도시에 어울리고 조화로움을 찾아내는 것에 치중하는 대학원 수업방식은 그의 건축관과 일치했다. 역사성 있는 건축물 사이에 퍼즐 맞추듯 균형되고 절제된 창의적인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적성과 딱 맞아떨어졌다. 당연히 대학 시절보다 더 흥미있게 학업에 몰입했다. 도시계획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학장과 유능한 교수 밑에서 좌충우돌하며 대학원을 마친 그는 파리에 있는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설계현장에 뛰어들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난 신 소장과 결혼한 뒤 만 9년 동안의 파리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서울에 건축사무소를 차렸다. 신 소장과는 건축 지향점이 같아 눈빛만 보고도 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있다. 인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건축 파트너로 함께 묵묵히 나가고 있다.

“부부 건축사일지라도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 경우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두 사람은 서울 종로구 북촌에 처음 건축사무소를 열었을 당시 골목길을 오가는 동네 주민들과 거리감을 없애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개업 초기 사무실을 알릴 겸 동네를 많이 걸어 다니며 골목길과 한옥이 만들어내는 건축미를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부부 건축가가 건축사무소를 열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근 주민들이 일부러 찾거나 호기심에 말을 걸기도 했다. 어느 정도 낯이 익자 풍경 좋고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았다. 동네에서 만난 이웃들은 “뭐 하시는 분이냐” “건축이 어렵지 않냐” “어떤 집을 지어야 후회하지 않느냐” 등 평소 갖고 있던 건축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서 ‘동네 건축가’로 자리를 잡았다. 동네 주민과의 진솔한 대화는 ‘동네 사람들, 건축을 말하다’라는 소식지로 만들어졌다. 예쁜 한옥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분, 대문 등 친근감 있는 동네 모습이 담긴 소식지가 나오자 주민들이 반겼다. 신 대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건축계 동료 등 전문가들을 상대로 건축에 관한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눈 뒤 ‘건축가, 건축을 말하다’라는 소식지를 만들 계획이다. 이후 또 다른 대상자를 정해 ‘건축을 말하다’ 시리즈를 이어갈 생각을 갖고 있다.

젊은 건축가 부부의 솔직하고 성실한 모습에 반한 주민들은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 북촌 주민들의 속내를 듣는 순간 ‘공공건축’ 분야의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멋진 공간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공건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공공건축의 질이 높아지면 이용하는 주민들한테는 긍정적인 경험이 축적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배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일상생활에서 축적된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들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도외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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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공공건축물을 지어 여러 사람이 그 혜택을 받으면 건축뿐만 아니라 감정과 경험 등이 생활에 영향을 미쳐요. 건축가로서 그렇게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신 대표는 2014년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북인사안내소’의 설계를 맡으며 공공건축물 설계를 시작했다. 이후 청소년문화관 등 주민들이 공간적 경험을 흠뻑 느낄 만한 건물을 설계했다.

요즘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복합도서관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설계가 끝나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 복합도서관에는 어린이집과 실내 놀이터, 도서관이 공존한다. 한정된 공간에 각기 다른 기능을 갖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순기능이 커 애착을 갖고 있다. 단순히 책만 보는 공간에서 벗어나 지역의 문화거점시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다.

특히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작업은 ‘서울로 7017 2단계 연결길’ 조성 프로젝트다. 서울로에서 서계동과 중림동 등으로 뻗어나가는 보행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면서 단절된 길을 녹지로 만들어 연결하거나 보행길을 조성해 봉제공장 등 기존산업을 활성화하고 주거여건을 개선하려 합니다.” 현재 기본계획수립은 끝났지만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골목생활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사업발굴과 보완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스튜디오는 연결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활짝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연결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공부한 것과 북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일한 경험이 연결길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주민들과 격의 없이 주고받는 대화에 건축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더해지면 골목길을 새로운 명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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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연결길이 복합도서관과는 결이 많이 다른 작업이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성숙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남은 숙제다. 북촌 주민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를 소식지로 만들어냈듯이 골목생활스튜디오를 통해 뭔가를 해보겠다는 기대가 있다고. “변화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좋은 출발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신 대표는 후진 양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4년째 대학 건축학과에 출강한다. 이번 학기는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건축에 대한 흥미와 기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는 건축에 관심 있거나 전공 학생은 네덜란드 건축가이자 공공건축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수업’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이 책은 그가 델프트공대 재직 당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빈곤한 공공 건축 담론을 풍성하게 해줄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사례가 소개돼 있다.

그는 파리에 가면 우선 퐁피두센터와 노트르담 대성당을 꼭 볼 것을 권한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미술관 영화관 등이 들어선 퐁피두센터에서는 문화의 메카로서 왜 파리의 심장이라 불리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시대상을 완벽하게 건축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숙연함이 느껴질 거예요.”

신 대표는 “건축가를 카리스마 있게 청중과 단원을 휘어잡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영화감독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지만 배려하고 품어주고 소통하는 덕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런 건축가가 되기를 추구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신호섭 대표는…

●1974년 서울 출생 ●고려대 건축공학과 학사 ●프랑스 마른나발레 국립건축학교 DPLG(프랑스국가공인건축사) ●대한민국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신아키텍츠 대표 ●서울시 공공건축가 ●서울시교육청 MA건축가 ●연세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서울로 2단계연결길 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꿈을담는교실사업 건축가 ●흑석동 복합 도서관 설계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리모델링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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