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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 네트워크 종속된 현대인 형상화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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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디지털 시대의 삶 작품화 /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변화 / 미디어 환경에서 취합된 이미지 반추 / 온라인에 사로잡힌 하나의 존재 양식 / 새로운 감각·행동·사고 방식 만들어내 / 염지혜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 눈길 / ‘복사’·‘붙여넣기’처럼 반복적 삶 그려 / 안가영 ‘헤르메스의 상자’ 관객들 참여 / 택배 상자 들고 미로속 출구 찾기 도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술계의 방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는 말 그대로 굉장했다. 물론 여기서는 부정적 의미의 굉장했음이다.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미술계도 피해갈 수 없었다. 시작은 아시아 최대 미술 장터인 아트바젤 홍콩이 행사를 전격 취소한 것이었다. 이어서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전시 공간들은 큰마음을 먹고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휴관하지 않는 경우에는 미술관 입구에 소독 게이트, 열화상 카메라 등을 설치했다. 그런데도 관람객 수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나타났다. 아트바젤 홍콩은 ‘온라인 뷰잉룸’을 아트바젤 공식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했다. 출품 예정이었던 작품을 온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는 서비스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튜브 채널에 큐레이터가 전시를 설명하는 감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SNS 게시물의 양을 평소보다 1.5배 늘렸다.

전에 없던 온라인 작품 감상이 어색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기간 온·오프라인 전시를 병행한 화랑미술제의 관람객 수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은 방문객보다 2000여명이나 더 많았다. 작품을 눈앞에 두고 체험하는 것이 감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상 방법에 변화가 일어나고 거기에 호응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며 작년에 본 전시 하나가 떠올랐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당신의 하루를 환영합니다’다. 온종일 디지털 네트워크에 종속하여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과 날씨를 확인하고 잠들기 전에 휴대전화로 이미지와 영상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러한 행동은 하나의 존재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감각, 행동, 사고방식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쩌면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십 년간 가속화된 변화. 우리는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세상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이것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나아진 부분은 더 잘 개발하기 위해서다. 이 전시는 여러 미디어 환경에서 취합한 이미지로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는 기회였다. 그리고 전시 작품 중 몇몇은 남다른 창의성으로 유쾌하게 현실 세계를 보여줘 기억에 남았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염지혜,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

염지혜(1982~)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가나, 이란, 팔레스타인, 핀란드, 브라질, 콜롬비아 등에서 다수의 레지던시와 기획전에 참여했다. 2016년에는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엔 파리국제예술공동체 입주 작가로 선정돼 머물렀다.

작가는 특정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 그들과 관계 맺기 등을 통한 개인적인 변화의 경험을 기록했다. 2014년부터 특정 장소는 동시대라는 공간으로 확장했고 그 안에서 우리의 경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준으로 자신의 경험, 생각과 타인의 경험, 생각 사이에 접점을 찾아 보편적인 영역으로 소재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주로 사용하는 영상 작업 방식도 풍부해졌다.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2015)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아마존에서 분홍돌고래를 만난 경험에서 비롯한다. 여기에 현지인이 들려준 분홍돌고래와 관련한 설화를 통해 아마존의 과거와 현재, 브라질의 사회와 역사를 아울러 담아냈다. 직접 촬영한 영상도 있지만, 스틸 이미지는 물론 3D 컴퓨터 그래픽까지 사용했다. 다채로운 기법이 어우러진 화면은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2016)는 현재 상황에서 특히 인상 깊다. 작가는 2015년 한국을 휩쓸고 지나간 메르스가 우리 모두에게 주었던 공포를 엮어냈다. 자신이 가나에서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느꼈던 죽음이라는 공포를 기반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공포들이 소문과 언론에 의해 어떻게 과장되는지를 담아냈다.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 안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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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지혜 작가의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 설치 장면. 일부 장면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영상이 나온다. 획일적이고 반복적인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말한다.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2017)다. ‘커런트 레이어즈’라는 세 개의 작품으로 구성한 작업 중 하나다. 이 작업은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쌓여온 것들을 지구의 과거와 현재, 현재의 우리 삶의 형태의 방식으로 담아냈다. 앞의 두 작업은 지질 시대부터 시작해 플라스틱으로 인해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토샵핑적 삶의 매너’에서는 인간의 인지 방식이 바뀌는 것을 포착해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포토샵 프로그램의 ‘복사(Ctrl+c)’와 ‘붙여넣기(Ctrl+v)’처럼 획일적이고 반복적인 현대인 삶의 방식을 말한다.

#안가영, 헤르메스의 상자

안가영(1985~)은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미디어 인터랙티브 및 기술과 예술의 융복합 설치에 관심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일상에서 인간과 디지털 속 어떤 것의 만남으로 인해 생기는 뜻밖의 재미와 오류에 주목하고, 이것을 게임과 예술을 접목한 작품으로 표현한다.

‘버츄얼 세린디피티’(2014)는 이러한 형태의 작품 중 하나다. ‘가상 세계에서의 뜻밖의 발견’이란 의미로 게임 엔진 기술 유니티 3D를 이용해서 제작했다. 전시장에는 대형스크린을 설치하고 그 앞에 3개의 버튼을 두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이미지와 텍스트는 랜덤하게 등장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용자의 정보와 조작에 따라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갖게 된다.

세계일보

안가영 작가의 ‘헤르메스의 상자’ 설치 장면. 관람객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서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전시에 소개했던 작품은 ‘헤르메스의 상자’(2018)다. 이 작품 역시 관람자가 참여하여 이끌어가는 구성이다. 공간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프롤로그가 쓰여 있다. ‘여느 때처럼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제우스로부터 택배 상자를 여신 해시(#)에게 전달해달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것은 항상 옮겨왔던 퀴퀴한 골판지 상자들이 아닌 비밀스럽고 단단하고 가벼운 상자였다. 헤르메스는 상자에 대한 의심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복잡한 미로로 길을 잘못 든다. 사람들은 이 미로를 ‘네트워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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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 관람객이 전달해야 하는 헤르메스의 상자. 전달 과정에서 상자 속 내용물은 처음과 달라져 있다. 온라인 정보가 불특정 다수를 거치며 변형, 전파되는 것과 같다.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각종 함정이 난무하는 네트워크 미로 공간 안에서 헤르메스의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전시장에 마련된 상자들을 들고 전시공간을 돌아다니면, 센서를 통해 움직임이 포착되어 게임 속 지형이 바뀐다. 또한 수집한 정보에 따라 상자 속 내용물이 변형되어, 게임은 관람객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 이것은 우리가 인터넷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변형되어 전파되는 모습과 같다. 우리의 소소한 온라인 행위가 데이터의 형태로 전환하여 또 다른 빅데이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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