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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내 주변 남자들도?" 'n번방' 사태에 불안 느끼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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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성도 함께 분노하고 공감 …"전체 남성 잠재적 가해자 취급 지나쳐" 반응도

"n번방 사건, 남성중심 사회 성착취·성폭력 연장선…남성들도 성찰해야"

연합뉴스

n번방 전원처벌 입법 촉구 국회포위 퍼포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얼마 전 'n번방 사건' 소식을 접한 여성 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자기 남자친구도 텔레그램을 쓰는지 걱정돼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자친구가 최근까지 텔레그램에 접속한 것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계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n번방' 이용자로 몰 수는 없어 아직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씨는 "조주빈도 겉모습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며 내심 불안해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만든 성 착취 영상물이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등에서 유통됐고, 수많은 이용자가 대화방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 중에도 'n번방' 등의 회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개의 참여자를 단순 취합한 숫자가 26만명에 달한다는 여성단체들의 주장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충격이 극대화한 상황이다. 여기에는 중복 인원이 상당수 포함됐을 개연성이 크나 유사한 성격의 방이 많아 이용자가 최소 수만명은 되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힘을 얻고 있다.

직장인 공모(26)씨는 28일 "연루된 사람이 26만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고 불안했다"며 "내 주변에도 한 명쯤은 있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1)씨도 "조주빈이 평소 열심히 자원봉사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며 "남자를 섣불리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주변 남성 지인들을 만나기도 꺼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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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성들의 이같은 불안감은 성 착취물 유통 대화방 참여자들의 신상정보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직장인 정모(32)씨는 "돈을 내고 'n번방', '박사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범죄를 후원한 공범"이라며 "이들의 신상을 모두 공개해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프리랜서 이모(28)씨도 "피해자들은 수만명 앞에 얼굴과 신상정보가 공개돼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가해자들은 보호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얼마 전 신상공개 촉구 국민청원에도 참여했고, 주변에도 참여를 독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는 제목의 청원은 전날 오후 현재 200만명 동의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남성들도 'n번방' 등에서 이뤄진 행위를 두고 함께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 이를 전체 남성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시각이 있다며 이는 지나치다는 반응도 나온다.

남성 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국내 웹하드나 성인사이트에 불법촬영물로 보이는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이라며 "그간 성 착취물을 안일하게 생각한 남성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 직장인 박모(34)씨는 "여성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선은 지나친 일반화"라고 주장했다.

'n번방' 관련 국민청원에 참여했다는 남성 대학생 김모(23)씨는 "이번 사건을 남녀 대결로 몰아가기보다 가해자들을 엄벌하고 재발을 방지할 방법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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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제공]



대학가 일각에서도 'n번방' 사태가 기존의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같은 범죄행위를 전체 남성의 문제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서기도 했다.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는 지난 24일 '언제까지 평등한 사회를 외쳐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n번방' 성폭력 사건은 성차별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용자 수 26만이라는 숫자가 중복 집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는 적지 않은 숫자이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라고 강조했다.

이에 농업생명과학대 연석회의가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성명문은 비약적인 논리로 학생 구성원들의 갈등을 유발한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가 중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며 성명문 전면 수정을 제안하는 내용의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은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해 온 성 착취, 성폭력의 연장선에 있다"며 "수많은 여성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이유도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술의 발전을 이용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윤을 획득했던 문화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며 "남성들도 여성들과 함께 성찰하고 변화해야 또 다른 'n번방'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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