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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갈등 씨앗된 착한 임대인 운동, ‘참여 늘려야’ vs ‘우리가 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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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파이낸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임대인과 임차인간 갈등 원인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전 인천 선학동 먹자골목에 걸린 임대료 인하 요청 현수막. 연합뉴스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은 업주의 임대료 일부를 면제해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

이 운동은 지난달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한 주요 상권의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차인의 임대료를 5~20% 인하해주면서 시작돼 전국 상권과 지방자치단체에 확산됐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임대료를 인하한 임대인을 대상으로 인하분의 50%를 소득·법인세에서 감면해주고, 화재안전패키지 설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 하이트진로, LG생활건강, 대우건설, 호반건설, 신동아건설 등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도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소상공인들은 착한 임대인 운동의 체감 효과는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4~9일 도소매업·외식업 등에 종사하는 소상공인 10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90.3%가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서울 강남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A 씨는 “코로나와 경기불황 여파로 올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 월 300만원인 임대료는 변함이 없다”며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미담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상인들이 적잖다”고 말했다.

마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B 씨는 “정부는 임대인을 지원할 게 아니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상공인을 도와줘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대인들의 입장은 반대다. 임대인 C 씨는 “건물 구입에 소요된 대출금 원금에 이자, 보유세, 공과금까지 내다보면 먹고 살기 빠듯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모두가 살기 힘든 시국에 임대료 인하를 의무처럼 요구하고, 경제적 부담 탓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 못하는 임대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정책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잖다. 예컨대 임대인이 임차인과 말을 맞춰 원래 100만원인 월세를 80만원만 받고 임대소득은 50만원으로 신고한다. 이렇게 서류를 꾸미면 임차인은 월세가 20만원 줄고, 임대인도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다. 결국 임대인과 임차인이 혈세에서 나온 정부 지원금을 나눠 먹는 셈이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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