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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07] 나물 파는 보살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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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나물 파는 보살 할매

얇은 봄 햇살도 머리에 이면 무거운가 보다 시끌벅적 사람들 소리 요란한 시장 어귀 한 보따리 봄나물 펼쳐 놓고 고갯방아를 찧는 할머니 나물 팔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고 꿈속 극락 미리 다녀오시는 모양이다

할머니 대신 파릇파릇 눈을 뜨고 있는 저 봄나물 다 팔고 나면 늙은 영감 저녁상에 간고등어 한 마리 올릴 수 있을까

냉이 달래 쑥 사이소 사이소 외치지도 않고 마음 다 아는 듯 눈 감고 앉은 모습이 왠지 경주 남산 바위 속 보살님 걸어 나온 것만 같다

―전인식(1964~ )

봄나물 꺾어 장에 나온 할머니. 졸음에 겨운 할머니 머리 위에 햇빛은 하얗기만 합니다. ‘봄 햇살도 머리에 이면 무거운가’ 봅니다. 그럴 리가요. 모든 짐을 머리에 이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풍습을 환기한 거지요. 불편을 이긴 다디단 졸음 앞에 ‘파릇파릇 눈을 뜬 봄나물’들의 대비가 상긋합니다.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갈 때에도 즐거운 비명을 지를 것만 같은 풋것들입니다. 달래 냉이 쑥, 달래 냉이 쑥, 달래 냉이 쑥, 이렇게 여러 번 읽고 사이소 사이소, 사이소 사이소… 이렇게 또 여러 번 읽어봅니다. 봄노래가 따로 없습니다. 장마당 모퉁이에 봄나물 몇 줌 펼쳤다가 저물면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팔리든지 말든지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사는 일의 깊이를 좇을 뿐입니다. ‘보살’이 따로 있겠습니까.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경주 남산 바위 속 보살’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토록 지극한 평범이 그러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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