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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특파원리포트] 트럼프와 쿠오모 뉴욕 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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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모 실용주의 접근에 비해 / 트럼프는 이상주의 대처 방식 / 두 지도자 리더십 스타일 대비 / 위기 오면 국민과 하나가 돼야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지도자의 역량은 위기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새로운 코로나19 진원지가 되면서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난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뉴욕주가 코로나19의 핵심 진원지이고, 쿠오모 주지사가 코로나19와 최일선에서 싸우는 야전 사령관이다. 민주당 출신의 쿠오모 주지사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대비되는 지도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쿠오모가 사실에 근거한 실용주의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는 데 반해 트럼프는 직관에 의존한 이상주의 대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일보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현재 3억2800만명가량의 미국 인구 중 2억2000만명가량이 주 정부와 시 당국의 ‘자택 대피’ 명령을 받은 상태로 지내고 있다. 많은 미국인이 자택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자녀들과 지내면서 실직, 폐업 속출에 따른 생계 걱정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의 전개 추이와 정부나 지도자의 해결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쿠오모 주지사는 마치 경쟁하듯 하루에 한 번씩 기자회견 형식으로 대국민 설명회를 연다. 쿠오모 주지사는 오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에 대략 1시간 안팎으로 회견하고 CNN, 폭스뉴스, MSNBC 등 케이블 뉴스 채널이 이를 생중계한다. 이 패턴이 매일같이 반복되면서 두 지도자의 리더십 스타일이 미국 언론과 미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트럼프와 쿠오모는 상대방의 회견을 지켜보면서 서로 치켜세우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면서 코로나19 사태를 헤쳐가고 있다.

두 지도자의 대결에서 쿠오모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숀 해니티 폭스뉴스 앵커도 쿠오모 주지사를 칭찬할 정도다. 쿠오모 주지사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수 있고, 바로 그런 이유로 그가 제시한 대책을 따를 수 있다는 게 뉴욕 주민의 대체적 반응이다. 특이한 점은 쿠오모 주지사가 코로나19 사태의 비관적 시나리오를 강조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낙관론을 개진한다는 사실이다. 쿠오모는 매번 회견 때마다 뉴욕에서 확진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나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이 턱없이 부족해 심각한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고 털어놓는다.

쿠오모는 파워포인트를 동원해 분야별로 상세하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으로 현 상황을 브리핑한다. 그는 뉴욕주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주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 그는 이웃 주민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수시로 자신의 노모와 20대 딸을 예로 들면서 친근하게 접근한다. 이런 자세로 인해 주지사와 주민 간에 괴리가 아니라 공감대가 형성된다. 쿠오모는 경제 정상화를 서두르는 트럼프를 겨냥해 “인간의 생명 값을 돈으로 계산하지 말라”며 “세상에 희생해도 좋을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인명 피해보다는 경제를 더 걱정한다. 국가 전체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의 입장에서 인명 피해 못지않게 경제가 붕괴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감으로 1년에 평균 3만6000명가량이 사망한다며 언제까지 경제 활동을 동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다고 자동차 생산을 중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잊지 않는다. 트럼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역대 전임 정부가 빈껍데기 의료 시스템을 넘겨주었고, 야당이 사기극을 하고 있으며 언론이 자기를 선거에서 떨어뜨리려고 가짜 뉴스를 양산한다고 남 탓을 늘어놓는다. 그러니 쿠오모가 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트럼프와 쿠오모는 닮은꼴이었다. 각각 부동산 재벌과 뉴욕 주지사의 아들로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금수저다. 자기중심적이고, 무뚝뚝하며 적을 야비하게 공격하고, 충성파를 중용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규칙을 어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이 닮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밉상이던 쿠오모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지도자가 완벽할 수는 없으나 위기가 오면 정치적 계산을 버리고 국민과 하나가 돼야 한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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