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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고] 저유가가 주는 기회, 자원개발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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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벌어지는 유가전쟁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치킨게임이고 미국의 셰일업체를 궤멸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은 정확하지 않다. 러시아가 감산연장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무임승차자'가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왔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원유 판매가격을 시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낮춘 것은 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러시아를 압박하여 다시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유가 급락으로 셰일업체가 도산에 직면하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미국의 메이저 석유업체가 인수에 나설 것이고 기술력을 동원해 더 효율적으로 원유를 생산할 것이다. 일부 부실한 셰일업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들의 유정도 같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업체에 인수된 유정의 생산성은 오히려 향상되고 공급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사우디는 시장에서 쉽게 몰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들은 '너 죽고 나 죽는' 어리석은 게임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급격한 경기침체와 석유수요 위축으로 가격인하 경쟁을 하고 있지만 수요가 회복되면 이들은 바로 가격을 끌어올리려 할 것이다. 유가는 결국 석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 '큰손'들이 모두 수긍하는 수준으로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 물론 이 균형점은 지금의 유가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유가 급락으로 미국의 중소 셰일업체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은 타당하다. 가뜩이나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셰일업체들이 유가 폭락으로 채산성이 악화해 디폴트 리스크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 생산비용이 배럴당 40달러를 웃도는 셰일업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수준의 유가가 지속되면 적잖은 기업이 도산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 셰일업체의 현금흐름은 이미 작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주주들마저 배당금 압박을 강화함에 따라 투자 여력이 떨어져 생산이 정체되고 있다. 금년 WTI 유가가 평균 35달러에 머물면 미국의 원유생산은 현재 하루 1300만배럴에서 975만배럴로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주요 석유기업들의 기존 투자 효과가 마무리되는 2025년 이후에는 생산량이 더 감소해 유가의 구조적 반등이 예상된다. 유가 하락이 주는 자원개발의 기회가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가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지금처럼 값싸고 풍부한 남의 나라 석유에 취해 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의 원유 도입 경쟁국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국영석유업체의 자본투자를 크게 증대시켜 UAE, 멕시코, 이란, 우간다 등에서 해외자산을 공격적으로 매입했으며, 일본도 적극적인 해외투자로 자주개발률을 30%로 높였고 2040년까지 40%를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외자원개발에서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있다.

국제유가가 바닥을 치는 지금이 해외자산 투자의 적기이다. 특히 신용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중소 셰일업체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기업들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유가가 주는 기회를 잡기 위해 정부와 석유개발 전문 공기업인 석유공사를 중심으로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적기에 선제적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이종헌 S&P 글로벌플래츠 수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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