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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불출마 채이배 “정치판, 좋은 경쟁 사라지고 나쁜 경쟁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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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채이배 민생당 의원

“정치판, 여야 불문 위성정당 난립”

“온전한 연동형으로 선거법 바꿔야”

“외부감사법·채무자회생법 통과는 큰 성과”

“n번방 강경 처벌 논의 확대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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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재벌 저격수’로 활약해 온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25일 후원자 1000명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불출마 결정을 ‘조용히’ 알렸다. 채 의원은 후원자들에게 “21대 국회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당의 상황과 여야 모든 정당의 공천 난맥상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며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이번 총선에는 나서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더 크게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채 의원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선택한 정당에서 희망이 없다고 봤다. 호남 3당 합당으로 결론이 났을 때 더이상 이 당이 나아질 것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제3지대 공간을 잠식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난립 사태를 두고선 “정치판에 좋은 경쟁은 사라지고 나쁜 경쟁만 남았다”고 꼬집었다.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진입한 그는 지난 4년간 ‘재벌 저격수’로 활약하며 경제민주화 활동에 앞장섰고, ‘제3지대’ 확장을 위해서도 힘써왔다. 의원실 ‘감금’까지 당해가며 거대 양당 독식을 막기 위해 선거법 처리를 주도했던 채 의원이 불출마를 결정한 것은 20대 국회의 갈등과 한계를 보이는 한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불출마를 선언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이었나?

“민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지대’ 확장을 통해서 의미 있는 선거를 치러보고 싶었지만, 당은 반대로 ‘민주당 2중대’처럼 변해갔다. 내분을 보이면서 국민에서 멀어져가는 식으로 당이 운영되면서 출마를 접었다. 나중엔 출마가 더 흠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처음엔 청년세대를 통해 새로운 정당으로 변신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손학규 당시 대표의 마지막 선택은 청년이 아닌, 기존 정치세력이었다. 대안신당·평화당과 합당하면서 결국은 당이 미래가 아닌 과거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미래 세대가 성장할 수 있는 희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 그 사이 국회의 이슈는 ‘위성정당 창당’이 됐다. 민생당도 비례연합 정당 참여를 고민했다.

“지금 모습의 선거법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민심 그대로가 온전히 반영되는 연동형으로 가야 한다. 청년 후보, 초선, 정치신인들을 국회에 입성할 수 있게끔 석패율제를 운용하면서 정당끼리 ‘좋은 경쟁’을 하는 구도가 돼야 한다. 위성정당 사태는 ‘나쁜 경쟁’에 매몰되고 있는 모습이다. 부작용을 알았기 때문에 21대엔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양당제를 극복해나가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 실험을 하는 중이다. 한번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니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한다. 선거법 개정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 분산 문제도 원포인트 개헌으로 바꿔야 한다. 21대 국회 임기 초반에 결론 내주길 바란다. 실패하지 않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 여야 모두 위성정당 창당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미래한국당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공천 과정을 보면 군소정당이 들어올 기회가 없었다. 지도부 결정에 수용되는 상황이 전개됐을 뿐이다. 그들(군소정당)에게 1자리씩 주는 것은 전체 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아 비례대표 후보를 세운다고 했는데 이익단체 사람들이 다수 들어오게 되면서 명분은 허울이 됐다. 민주당 표를 더 확보하기 위해 이익단체를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쓰이게 된 것 아니냐. 그런 면에서 더불어시민당엔 제대로 된 가치 없고 시민사회단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인 것도 아닌 완벽하게 미래한국당의 아류가 된 모습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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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의원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건 지난해 4월 정치개혁·사법개혁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 처리 과정에서 벌어진 ‘감금사건’이었다. 채 의원은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을 처리할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 되는 과정에서 의원실에 들이닥친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출입을 저지당해 6시간 넘게 붙잡혀 있었다. 그가 결국 112에 신고해 의원실에서 빠져나온 해프닝은 20대 국회 ‘최악의 장면’ 중 하나다. 당시 창문 틈으로 연 기자회견은 <시엔엔>(CNN) 뉴스에까지 보도됐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무엇이었나.

“4년 전 ‘재벌개혁’이란 소명을 갖고 국회에 들어왔다. 외부감사법, 채무자회생법을 통과시킨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재벌의 지배구조를 직접적으로 바꾸는 것은 미래통합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큰 틀에서 숙제는 계속될 것이다. 역시 기억에 남은 것은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이었다. 정치 개혁·검찰 개혁 과정의 한복판에서 역할을 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라고 본다. 거대 양당 소속이라면 이만큼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패스트트랙 사태 이전까지 20대 국회는 의미 있는 민생법안을 다수 처리하기도 했다. 인터넷 전문은행법 통과, 규제프리존법 통과 등도 의미있었다.”

그는 “채이배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그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다 정치권에 입문했다. 향후에도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는 역할 안에서 재벌개혁이라는 큰 줄기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겠다고 했다. 그는 불출마를 발표하며 후원금 기부 의사도 밝혔다. 그는 이달 초 노들장애인야학,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 등에 마스크 구매 비용을 기부한 데 이어, 임기가 끝나는 5월에는 남은 후원금을 학대피해아동 보호사업과 저소득가정 여학생 위생용품 지원사업에 기부하기로 했다.

- 두 달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현행법 안에서 엔(n)번방 사건을 처벌할 수 있도록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 사건이 자꾸 입법 미비, 법이 없어서 처벌이 어렵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2013년에 카카오톡으로 아동·청소년에 대해 나체 사진을 보내게 한 사건에 대해 성 매수로 적용해 처벌한 판례가 있다. 엔번방에 들어간 사람들이 단순 가담자, 음란물 소지가 아닌 성 매수,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사당국과 법원이 제대로 법리를 검토해 적용해야 한다.”

- 20대 국회 ‘재벌 저격수’로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선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임기 후 계획은 무엇인가.

“촛불을 들었을 때 시민들은 재벌개혁도 중요한 과제로 요구했지만 이번 정부에선 사실 성과가 거의 없다고 본다. 비례대표 후보나 지역구 후보들을 봐도 그런 목소리를 내줄 분이 여당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혁신성장 등을 주장하는 후보자들은 몇 있다. 그분들이 공정경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준다면 더 힘있게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국회 밖에서도 재벌개혁이라는 맥락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이냐, 방법론에선 고민 중이다. 일단은 정치적 활동에서 떠나 원래 했던 ‘경제 민주화’ 활동에 매진하려 한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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