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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함인희의세상보기] ‘사회적 거리두기’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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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영역 ‘4가지 범주’로 분류 / 대상 따라 일정 거리 유지 본능 / ‘심리적 거리두기’로 변형 안돼 / ‘건강·적절한 거리’ 유지 노력을

지난주 지인으로부터 왜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전달받았다.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자 빠른 속도로 불이 번져나가는데, 성냥개비를 한 개비 빼자 급속히 번져나가던 불길이 순간 멈춰버리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저지하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음을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확인해 준 영상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캠페인이 등장하긴 했지만, 우리네 일상 속에 ‘사회적 거리’가 존재한다는 데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오래전 일이다. 1966년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영역’(personal space) 개념을 통해 사람들은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그에 부응하여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포착한 바 있다.

세계일보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홀은 개인 영역을 4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범주는 ‘밀접한 거리’로 약 45cm까지 허용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밀접한 거리는 부모, 자식,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영역이다.

둘째 범주는 ‘개인적 거리’로 약 45∼120cm까지 허용되는 공간을 지칭한다. 이 경우도 친구, 친족, 지인 등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셋째 범주는 ‘사회적 거리’로 약 120∼360cm에 이르는 공간을 뜻한다. 공식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인터뷰를 할 때 유지되는 거리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 넷째 범주는 ‘공적 거리’로 360cm 이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공연장 안에서 유지되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나 대형 강의실의 학생과 교수 사이의 거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4개 범주의 개인 영역 안에서도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밀접한 거리와 개인적 거리일 터. 한데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개인 영역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지하철이나 도서관 등 공공영역에서 일면식도 없는 낯선 타인이 밀접한 거리나 개인적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가방을 어깨에 멘다거나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는 등의 방식으로 물리적 경계를 만들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친밀한 공간 범주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지 않음을 암암리에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대상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은 동물 세계에서는 거의 본능적 행동인 듯하다. 얀 마텔이 2001년 발표한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분에 동물원학에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 파이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로 하여금 인간이란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 동물원학의 핵심임을 파악하게 된다.

동물원을 설계할 때의 관건은 동물들의 비상거리(flight distance)를 단축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여기서 비상거리라 함은 동물이 적으로 간주한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있고자 하는 최소한의 거리를 칭하는데, 동물마다 천차만별임은 물론이다.

일례로 야생의 플라밍고는 300야드(약 274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간은 개의치 않지만, 그 영역을 침범해오는 순간 긴장 상태에 들어가 때론 심장 및 폐가 정지하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린은 상대가 자동차에 타고 있다면 30야드까지도 접근을 허용하지만, 걷고 있다면 150야드 이내로 접근하면 성큼 도망을 친다고 한다. 피들러 크랩(농게)은 10야드만 접근해도 냅다 줄행랑을 치고, 하울러원숭이는 20야드만 접근해도 나뭇가지를 흔들어 공포를 표현하며, 아프리카 물소는 75야드에서 공격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고양이는 눈으로, 사슴은 귀로, 곰은 냄새로 자신들만의 비상거리를 계산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한편에서는 노인 세대를 중심으로 ‘집콕’ ‘방콕’으로 인한 우울함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당연시해온 일상을 잠시나마 잃어버리고 나니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하소연도 자주 듣게 된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이 상태가 편하게 느껴진다는 신세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사회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개개인의 차원에서 삶에 부여하는 가치나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것이요, 가족을 위시한 친밀한 관계의 의미나 위상도 심대한 변화를 겪을 것이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행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리적 거리두기로 이어지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세심하고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일이다. 친밀한 관계 및 개인적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성찰하고, 사회적 관계 및 공적 관계에서 ‘건강한 거리’를 확보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폭넓게 소통해야 할 것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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