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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배연국칼럼] 우리는 왜 장미를 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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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부패·부정선거 찌든 조지아 / 국민의 장미혁명으로 무너져 / 총선서 정권 부조리 심판 않으면 / 권력의 전횡 피할 수 없을 것

봄은 멀었다. 초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중순이었다. 군중들이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자유광장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빨간 장미꽃이 쥐여 있었다. 장미의 물결은 금세 수만으로 늘어났다. “부정선거! 대통령은 하야하라.” 평화시위가 계속되자 에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민주화의 봄’을 앞당긴 2003년 조지아 장미혁명의 얘기다. 조지아의 봄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인접 국가에서 오렌지혁명, 튤립혁명으로 꽃을 피웠다.

광장의 장미는 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는 조지아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집권층은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총선의 투표 결과까지 조작하는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요즘 우리가 처한 실상과 닮지 않았는가.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


무능은 문재인정부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정권의 실력은 코로나19 사태 후 마스크 파동에서 밑바닥을 드러냈다. 마스크 하나 해결 못 하는 깜냥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외려 민간기업과 의료진이 이룬 방역의 성과물을 가로채고는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양심이 없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부패도 심상치 않다. 라임 금융사기 사건과 태양광사업에 집권층의 이름들이 어른거린다. 울산 선거공작 의혹에는 청와대 수석을 비롯한 정권 실세 13명이 나란히 명단을 올렸다. 조지아 집권층처럼 부조리 3박자를 고루 갖춘 셈이다.

문정부에게는 조지아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악을 선으로 포장하는 ‘위선’이다. 반칙을 공정으로, 부정을 개혁으로, 불의를 정의로 위장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조국 사태에서 국민은 그 민낯을 봤다. 그들은 ‘사람이 먼저’라고 한다.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 때 각료들이 전원 묵념을 올린 것은 그런 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희생자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15명 죽은 낚싯배 사고가 “정부 책임”이라던 대통령도 그보다 열 배 많은 코로나 망자엔 침묵한다. 정부 책임으로 치자면 초동 대처에 실패한 이번이 더 크지 않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초대형 코로나 폭설도 거짓의 바벨탑을 하얗게 덮지는 못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약속이란 말 속의 약속마저 공허하게 들린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위선으로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되레 늘고 있다.

국민 중에는 삼류 정치에 낙심해 투표를 포기하려는 이들이 있을 터이다. 그때는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경구를 떠올릴 일이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인 단테는 더 무서운 경고를 날렸다. 세상의 불의를 보고도 방관하는 자들은 지옥에서조차 거부당한다고 했다. 선거 포기는 죄악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민주제도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원래 나쁜 정치를 전제로 탄생한 것이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권력을 셋으로 나눠 서로 감시하게 만든 것이 삼권분립이다. 하나가 어떤 행위를 할 때 나머지 둘이 지켜보라는 취지다. 이런 민주적 장치가 지금 단단히 고장났다. 제왕적 대통령이 입법과 사법까지 틀어쥐는 바람에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일방통행 국정이 반복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최소한 민주 시스템만큼은 복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은 권력 전횡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4·15 총선은 딱 보름 남았다. 지금부터 국민 각자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들자. 빨간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렬한 사랑, 대한민국을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장미꽃을 들자. 늪에 빠진 민주주의를 건져내는 길은 그뿐이다. 더는 거짓에 속지 말고 진실을 꽃피우자. 곧 이 땅을 물들일 장미에게 부끄러운 삶이 되지 않도록.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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