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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얘들아, 온라인 수업중엔 다른 영상 좀 꺼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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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으로 가닥… 교육부는 스마트 장비 현황조차 몰라]

선생님도 학생도 준비 안돼… 온라인 개학 땐 혼란 우려

쌍방향 수업 가능한 학교 1% 안되는데… 그냥 밀어붙이는 정부

상당수 학교 녹화장비 없고, 온라인 학급방조차 없는 곳도

시범수업 중 서버 다운… "초등 저학년은 혼자서 수업 힘들어"

3월 한달 그냥 허송세월… 학교별 지역별 인프라 격차 우려

"얘들아, 다른 영상 소리 좀 꺼주면 고맙겠는데…."

30일 서울 영풍초등학교 6학년 3반 교실에서 김현수 교사가 온라인 원격 수업으로 사회를 가르치면서 화면 속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켜달라고 요청했다. 일부 학생들이 화상 카메라를 켜지 않아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화면에 나온) 6번 친구는 누구지? 댓글로 답해보세요." 한 학생이 혼자서 듣고 있던 다른 영상의 노랫소리가 모두에게 들리기도 했다. 김 교사는 연신 "음소거를 해야 한다"면서 마이크를 꺼달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했다. 학습용으로 공유한 자료의 일부 페이지가 실수로 삭제돼 수업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초·중·고교 1곳씩 총 3개 학교의 원격 수업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범학교 격인 이 학교들도 수업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30일로 개학 연기 5주 차에 접어들면서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교에서 본격적인 온라인 수업이 시작됐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학사 운영 방안'에 따르면, 지난20일까지는 교사가 온라인 학급방을 개설한 뒤 예습 과제 등 학습 자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23일부터 정규 수업에 준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30일에도 대다수의 학교는 이달초와 마찬가지로 학습 자료만 올리는 데 그쳤다. 열흘 넘게 새 자료를 올리지 않는 학교도 있었고, 아직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한 온라인 학급방도 만들지 않은 학교가 많다.

교육계에서는 학교 시간표에 따라 모든 수업을 실시간 양방향으로 할 수 있는 학교가 1%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오늘 개학 추가 연기, 온라인 개학 여부 등을 결정, 발표할 예정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교육 당국이 선제적 대책을 못 내놓고 매번 상황만 지켜보다 임박하게 결정해 교육계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불안한 부모들은 사교육을 더 의지하고, 온라인 수업 준비가 안 된 학교 현장은 사실상 손을 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부는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전국 초·중·고교의 등교 개학을 연기하고 '온라인 개학'(개학 후 원격 수업 진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거나 녹화 강의 영상 등을 올려 수업해야 하는데 강의 영상은커녕 온라인 학급방조차 만들지 않은 학교가 많은 형편이다. 일부 특목고 등만 본격적인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교육 격차'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공용 컴퓨터 느려 개인용으로 수업

30일 서울시교육청이 원격 수업 시범학교로 지정한 초·중·고교 1곳씩이 공개한 온라인 수업도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냈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 서울 영풍초 김현수 교사는 "고학년은 쌍방향 수업이 가능하지만, 저학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 교사는 이날 본인의 컴퓨터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에 있는 공용 컴퓨터는 속도가 느려 실시간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30일 서울 성북구 종암중학교에서 교사가 스마트폰을 앞에다 두고 실시간 원격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종암중학교는 온라인 개학에 대비해 이날부터 4월 3일까지 전 교사가 정규 수업에 준하는 원격 교육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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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광주교육청이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개학 대비 교육'은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벌어졌다. 교사들이 동시에 접속하자 서버가 다운돼 영상이 10분간 정지되는 일이 벌어졌다. 교사들은 댓글 등으로 "선생님들 접속도 원활하지 않은데 어떻게 학생들이 한꺼번에 동시에 접속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교육부 이제야 학급별 기기 현황 파악

교육계에서는 이런 정도의 실시간 화상 수업이 가능한 학교가 극히 드물다고 보고 있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은커녕 사전 녹화 강의도 장비가 없어 엄두를 못 내고, 온라인으로 과제를 내는 정도의 학교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 한 일반고에서는 교육 당국의 지침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 교사는 "정부가 3월 2일 개학을 연기할 당시에 온라인 수업에 대비할 매뉴얼을 배포하거나 교사 연수라도 해야 했는데 못했다"며 "3월 한 달을 그냥 날린 셈"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고교도 최근 교사 회의를 열어 온라인으로 과제를 내주는 방식을 유지하고, 실시간 온라인 수업은 하지 않기로 결론 냈다. 이 학교 교사는 "학교에 카메라도 없고 서버 문제도 걱정돼 파워포인트 수업 자료에 교사 목소리를 입히는 식으로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술정보원의 e학습터에 온라인 학급을 만들었는데, 우리 반 학생 17명 중 1명도 가입하지 않았다"며 "학교별, 지역별 교육 격차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경기외고 관계자는 "실시간 강의를 위한 장비 마련에 6000만원이 들었다"며 "예산 지원 없이 실시간 수업을 전면 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현재 각 가정의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기기 보유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야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공문을 보내 조사 중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늘 학급별 스마트 기기 보유 현황을 집계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오후 4시까지 보고하라고 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했다.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 여부 등을 발표하면서 이에 따른 교육 격차 해소 방안도 함께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토]오늘 개학 여부 발표…'온라인 개학' 유력에 "교육 격차 커질 것"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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