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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불법촬영물을 '야동' 보듯"…한국의 성교육,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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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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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회관 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하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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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에 연루된 청소년 가담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검거된 '태평양원정대' 운영자 A군(16)은 박사방 운영진이기도 했다. 조주빈(25) 등 개인의 악행에 가담한 수만명 중 10대와 20대 초반 남성이 다수다.

만연한 SNS 성범죄를 퇴출시키기 위해선 공교육과 가정 노력을 통해 청소년 시기의 성 인식을 제대로 가다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범죄 만연한 SNS 노출…'생존 수영' 모르고 인터넷 바다 뛰어드는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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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종로경찰서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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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온라인 메신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만연한 곳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 범죄 85.5%가 SNS, 메신저, 스마트폰 애플리캐이션(앱)으로 시작(2018년 기준)된다.

성범죄를 노리는 이들은 호기심 또는 일탈로 성적 게시물에 접근하거나 이를 올린 청소년들에게 접근한다. 자신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불법적인 성범죄를 노리는 성인들이 사라져야 하지만, 성적인 대화가 오가는 채팅방에 무심코 입장하거나 SNS에 '일탈계' 게시물이라며 자신의 신체 일부를 올리는 청소년들의 그릇된 성의식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청소년 성문화센터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사회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2014년쯤부터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했다"며 "아직 미진한 학교 성교육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청소년은 개인·친구끼리 대화하는 SNS를 1대1 매체로 여기는 속성이 있다"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남이 내 사진을 쉽게 퍼뜨릴 수 있는 공공매체임을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너를 정말 좋아하는 어른은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을 때 너희 부모님 동의를 먼저 구한다' '사진·개인정보 등을 함부로 달라고 하지 않는다'며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교육은 디지털 시대 '생존 수영'"이라며 "성적으로 접근하는 성인이 가장 문제지만 대처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이 단순한 과시 수단이 돼선 안되며, 이용당하거나 피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면서 "동시에 무분별한 업로드의 위험성도 분명히 인지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임 위주 교육보단"…감정·포괄적 교육 제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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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능욕 영상을 찾아다닌 10대들을 응징하는 텔레그램 자경단 '중앙정보부' 관련 사진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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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교육 활동가들은 현재의 학교 성교육이 여전히 '피임 방법' 정도를 알려주는 데 국한된다고 지적한다. 오지연 성교육 스타트업 유니콘 대표는 "유럽 국가에서는 상대방이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르고 다양한 교과목 내용과 성을 연결짓는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포괄적 성교육은 유네스코 권장 가이드라인"이라며 "흔히 생물학적 영역이라 생각되는 성과 성행위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포괄적 성교육은 '감정 인지·표현' 방법을 가르친다. 아직 감정을 추상적으로 느끼는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감정을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좋은 감정은 꼭 뽀뽀나 스킨십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는 것 등 건전한 표현법을 알려준다.

또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킨십하고 싶은 마음, 성적 궁금증이 생기는 게 당연한 과정임을 가르쳐 준다. 오 대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성이 사회적 관계를 수반하며, 접근하는 사람이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지 판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포르노는 전후 맥락을 싹 자르고 성행위와 도구화된 여성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담시 불법촬영물을 단순 '야동'과 같다 봐 죄의식 없이 시청했다는 남학생들이 많다"며 "포르노를 통한 대상화, 상업성을 알아야 이를 본딴 불법촬영물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괄적 성교육은 일반 교과목과 성교육의 혼합도 지향한다. 오 대표는 "성이 포괄적인 분야라 모든 과목과 닿아 있다"며 "법 시간에 외국과 한국의 성 관련 법을 알려줄 수도 있고 문학을 성평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1년 15시간 성교육 시간 적어"…"교원 마련 방안 시급"



오 대표는 "공교육이 포괄적 성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며 "포괄적 성교육을 받은 유럽 학생들 인터뷰 결과 '성범죄는 절대 안된다'는 인식 변화가 확인됐고 한국 학생들 만족도도 높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학의 변화를 주문했다. 오 대표는 "교사 자격 이수 과정에 학교폭력 학생, 장애학생 상담 방법 등은 포함돼 있는데 성교육 관련 내용은 전무하다"며 "성교육 과정을 필수로 넣어 예비 교사부터 학생의 성 고민을 들어주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성교육은 필수가 아닌 권고사항이라 학교장 관심에 따라 제공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며 "고학년이 갈수록 입시에 밀려 얼기설기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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