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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외교문서] 노태우 정부 '노동운동 격화' 우려에 ILO 가입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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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30년 기한만료' 1989년 외교문서 해제 국내 노동운동, 국제 이슈화될 수 있다고 우려 대외적으론 '北 반대' 내밀며 ILO 가입 보류 설명

노태우 정부가 국내에서 노동운동이 격화되는 것을 우려해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망설였던 과정이 포착됐다.

당시 ILO는 유엔전문기구 중 한국이 유일하게 미가입한 기구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9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및 대량 해고, 전국노동자협의회 준비위원회(민주노동의 전신) 등 노동 운동의 격변기였다.

이에 당시 정부는 ILO의 가입이 정치·경제적으로 부담될 것으로 판단, 1990년 ILO 조기 가입 추진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1989년 외교문서 속 ‘ILO 가입 추진 문제 검토 관계부처 회의록’에 따르면 외무부, 청와대, 총리실, 노동부,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협의를 통해 ‘ILO 조기 가입 유보’를 결정했다.

한국은 1982년부터 매년 ILO에 옵서버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ILO 가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총회 참가 대표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이 반대하면 득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가입을 미뤘다.

그러나 정작 당시 정부가 ILO 가입을 망설였던 배경에는 ‘노동운동 격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노동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로 거론될 가능성이 있고, ILO 협약이 노동투쟁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1989년 12월 19일 ILO 가입추진 대책 협의에서 노동부는 ‘ILO 가입 추진 보류’ 건의를 검토했다. 당시 정부가 전교조, 공무원 노조, 전노협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을 ILO가 문제 삼으면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또 국내법상 복수노조 금지 규정이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난다는 ILO의 지적도 두려워했다.

같은 해 12월 27일 열린 관계부처 회의에서 동구권 관계 개선으로 득표 여건이 개선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총리실, 노동부가 노사관계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피력하면서 결국 ILO 가입 추진은 ‘보류’로 결정 났다.

회의 자료에는 “국내 노동문제에 대한 ILO 간여는 국내 정치·경제면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재야 진보 정치권이 국내 노동·사회 문제를 ILO를 통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북한의 적극적 반대 책동이 예상되고, ILO 가입 요건이 워낙 까다롭다”고 대외적으로 가입 보류 배경을 설명하기로 했다.
아주경제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1989년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정부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여부를 놓고 노동운동 격화 우려에 따라 '갈팡질팡'했던 과정이 확인됐다



정혜인 기자 ajuchi@ajunews.com

정혜인 ajuch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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