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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인터뷰]코로나 아닌 ‘댄스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면?···유튜브 달군 영화 ‘유월’의 베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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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과 만난 영화 <유월>의 베프 감독은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유월’이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침범되지 않는 선에서의 사회적 규칙과 합의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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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범지구적 유행으로 세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또 다른 바이러스가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게시 두 달여 만에 유튜브 조회수 196만뷰(31일 기준)를 올리며 국내외 누리꾼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단편 영화 <유월> 속 ‘댄스 바이러스’다. 전염된 춤을 통해 우리 안에 갇힌 자유와 활기를 표현해 낸 <유월>은 코로나19로 고립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방감과 위안을 선사한다. 그것도 단 25분 만에. 놀랍게도 ‘학생 영화’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유월>을 발표하며 감독으로서 첫발을 뗀 베프 감독(32·본명 이병윤)을 지난 30일 서울 정동의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전혀 예상 못했어요. 15만뷰만 나와도 감사할 거라고 생각했죠. 게시 5일차부터는 하루 조회수가 10만뷰가 됐는데, 그때부터 무서워지더라고요(웃음). 저 개인에 대해 많은 것을 담은 영화인데, 아직 대중 앞에 설 준비는 안돼 있거든요.”

<유월>은 억압으로 꽉 묶인 교실, 눈동자를 움직이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춤을 추는 소년 민유월(심현서)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담임교사 혜림(최민)은 그런 유월을 곧바로 체벌하며 학급 전체를 통제한다. 공포가 지배하는 무채색의 학교, 베프 감독은 자신의 청소년기에서 이 공간을 꺼내왔다. “교실에서 저는 늘 ‘특이한 애’였어요. 국어시간에 지문을 읽다 혼자 막 웃기도 하고, 두발 규제 때문에 홧김에 삭발을 하기도 했죠. 많이 혼나고 맞았죠. 저의 평범하지 않은 모습들이 그렇게 꺾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격려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예요. 그렇다고 혜림처럼 억압하는 편에 섰던 이들을 탓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들도 나름의 사정이, 꿈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도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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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월을 연기한 배우 심현서는 극중에서 현대무용, 재즈, 발레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다. 영화 <유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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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정적의 교실을 단번에 뒤집는 것은 ‘전염’이다. 불현듯 원인 모를 ‘댄스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몸을 비틀며 감염되는 아이들 모습은 좀비 영화의 도입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전염이 곧 ‘전환’이 된다. 유월이 음악이 흐르는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괴상한 몸놀림들은 감각적인 춤으로 뒤바뀐다. 이 ‘댄스 바이러스’의 첫 발생지는 ‘헌팅턴 무도병’이란 단어가 적힌 베프 감독의 노트 위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움직이는 병인데요, 무용을 배워 극복한 사례를 접한 적이 있어요. 만약 질병처럼 춤이 전염되는 세상이라면, 처음엔 원치 않는 몸부림이 강림한 것처럼 괴로울 거예요. 하지만 점차 춤을 통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렇게 ‘댄스 바이러스’를 떠올렸어요.”

현대무용, 애크러배틱, 재즈, 탭댄스, 로킹, 얼반, 힙합, 한국무용…. <유월>의 세상은 춤으로 가득 찬다. 영화에서 춤은 곧 자유를 말하는 언어가 된다. 베프 감독은 그 이유를 자신의 삶에서 찾는다. “어머니께서 체육을 전공하고 가르칠 정도로 무척 활동적인 분이셨어요. 그런데 전신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이 생겨 더는 못하게 되셨죠. 움직임에 대한 열망이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학교를 쉬고 3년간 춤만 배운 적이 있어요. 전에는 몰랐던 기쁨과 자유를 알게 됐죠. 그때 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유월>을 만들었어요. 춤을 통해 찾은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영화죠.”


<유월>을 완성하는 것은 저마다 활기를 내뿜는 어린이 배우들의 열연이다. 특히 유월을 연기한 심현서(13)의 연기와 춤사위를 보노라면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2017·2018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를 맡았던 그는 공연계에서 이미 유명한 ‘천재 댄서’였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친구들이 이걸 어떻게 찍을 거냐고 다 말렸어요. 전 워낙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그냥 했죠(웃음). 현서는 <빌리 엘리어트>에서부터 눈여겨봤던 친구예요. ‘빌리’와 일체화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현서는 자신 안에 빌리를 빨아들인 느낌이었죠. 현서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허락해주셨어요. 다른 배우들은 공개 오디션으로 뽑았습니다. 일일이 댄스학원들에 포스터 붙여가며 홍보한 결과죠.”

제작비는 “영업비밀”에 부쳤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극중에 포클레인이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모부가 중장비 기사님이어서 직접 포클레인을 끌고 나와 연기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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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월>은 무채색의 교실을 벗어나 저마다의 빛깔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춤을 통해 표현한다. 영화 <유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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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적고 춤은 많은 영화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못한다.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월>이 주는 기쁨에 감염될 수 있다. “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을 죽이는 대신.” 400회 이상의 추천을 받은 한 해외 누리꾼의 댓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베프 감독은 “움직임에서 기쁨과 자유를 찾는” 안무가와 댄서들이 모인 ‘팀 유월’과 함께 앞으로도 영화와 춤이 결합된 작업을 이어간다. 연말 개봉 예정인, 베프 감독이 안무 감독으로 참여한 류승룡·염정아 주연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제)에서 ‘팀 유월’의 내일을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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