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3 (목)

[이희옥 칼럼] 코로나19 이후 '면역력이 경쟁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숙한 공동체의식 이끌어내도록

기획설계능력 갖춘 리더십 강화

스마트도시서 새 사업 기회 모색

시장·공공성 고려한 정책 추진을

서울경제


“낡은 질서는 죽었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화가 만든 국경을 타고 의료선진국의 거버넌스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도 보호주의에 다시 빗장을 걸고 방역국가를 택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글로벌 연대를 포기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진단장비가 부족하고 의료위생시설이 취약한 저개발 국가까지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면 인류공동체는 대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종을 일으키고 그 주기도 짧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감염병과의 전쟁은 뉴노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벌려 놓은 사회적 거리 사이로 이미 온라인 수업, 원격진료, 패밀리 케어, 스마트 워크, 온라인 유통이 아무런 저항 없이 진입했다. 큰 정부가 화려하게 복귀했고 공급위기가 나타나면서 가치사슬 체계도 국내화하기 시작했으며 집단이기주의에 감염된 규제장벽이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줄어든 자리에 가족이 자리 잡았다. ‘타다 금지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란도 에피소드를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고 기득권의 유효기간도 짧아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와 ‘전쟁’을 하고 있다.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고 성숙한 시민들은 대오를 유지하며 후방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체제에서는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이동을 준비해야 살아남는다. 더구나 기업은 세계적 저성장이 일상화돼 패자부활전을 쉽게 허용해 주지 않는 최전선에 서 있다. 그렇다고 이 위기를 피해가기도 어렵다. 설사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새로운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 매장이 체험만 하고 구매는 줄어드는 공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료와 무료 사이의 근본관계도 변하면서 광고나 파생상품만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중국은 ‘우한봉쇄’ 때 인기영화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를 실험한 바 있다. 여기에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건강을 희생하는 방식 대신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면역력이 경쟁력’이 된 시대가 도래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어떻게 발견하고 준비할 것인가. 첫째, 위기의 시대에 리더십과 분권의 의미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상대적으로 극복한 국가의 공통점은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충성과 가용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한편 이를 시스템화하는 리더십의 기획설계(top level design) 능력이었다. 둘째, 지구화되고 긴밀하게 연결된 곳일수록 오염이 심화한다는 점에서 유동성을 최대한 줄이고 미래를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는 스마트 도시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깔린 사회신경망인 온라인이 이를 충분히 연결해줄 것이다. 셋째, 시장과 공공성을 동시에 보는 안목을 틔우는 일이다. 지방정부와 시장맹신주의의 결합은 공공의 가치를 몰아내면서 최악의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황폐한 공공의료현장이 바로 그 사례이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미래로 가는 열쇠를 쥐고 우리에게 길을 묻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가 생산된다 해도 미래로 열린 창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기생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중증 기저질환을 도려내고 관행과 습관이 지배한 시대정신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의 말대로 개종 수준의 패러다임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와 실천의 문제다.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