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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더오래]'장남에게 전재산 상속' 유언장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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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10)





내가 죽으면 나의 모든 재산을 큰아들 B에게 준다. 집사람과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이미 먹고살 만큼씩 나누어 주었으니, 나의 유산 두고 싸우지 말고 내 뜻을 따라 어머니 잘 모시고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여라.

2018. 3. 26.

유언자 A (1934. 9. 11.생) A(서명) ⓐ(막도장)

- 대치동 나의 서재에서 씀

A(1934년생·남)씨는 2018년 3월 26일 대치동에 있는 자신의 집 서재에서 위와 같은 유언장을 볼펜을 이용해 작성한 후 이를 편지 봉투에 넣고 입구를 풀로 붙여 밀봉해 두었다.

A씨는 2019년 3월 26일 사망하였는데,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3녀가 있다. 상속재산으로는 성수동에 있는 시가 50억 원 상당의 빌딩, 시가 15억 원의 대치동 아파트와 운영하던 회사의 비상장주식 시가 30억 원 상당, 그밖에 예금과 보험 등 현금성 자산 5억 원이 있다. 장남 B씨는 2019년 7월 20일 A씨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부친 유언장을 발견했다며 유언장대로 성수동 빌딩 등 모든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바꾸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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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허용되는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비밀증서, 공정증서, 구수증서, 녹음 5가지인데, 민법에 그 각각의 요건이 자세히 정해져 있어서 이를 반드시 준수하여야만 유언의 효력이 발생한다. [사진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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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사후에 자신의 재산과 신분 관계에 대해 미리 정해 두는 것으로 유언자가 사망할 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언은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법률이나 선량한 풍속에 위배되는 것을 내용으로 할 수 없고 법에서 정한 방식을 준수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허용되는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 비밀증서, 공정증서, 구수증서(유언자가 말로 하고 증인이 받아 적어 작성한 증서), 녹음의 5가지다. 민법에서 그 각각의 요건을 자세히 정해 놓아, 이를 반드시 준수해야만 유언의 효력이 발생한다. 유언에 엄격한 방식이 요구되는 것은 그 유언장이 유언을 한 사람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인지 명확하게 해, 그로 인한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법에서 정한 방식을 갖추지 못한 유언은 설령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이더라도 효력이 없다.

유언자가 직접 유언장을 작성하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작성이 간편하고, 증인 등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할 필요가 없다. 또 비용이 들지 않고, 유언 여부나 그 내용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그 전문(全文)과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自書)하고 날인하는 방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A씨의 유언장에 대해 B씨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다음과 같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①상속재산에 대해서 하나하나 밝히지 않고 ‘나의 모든 재산’이라고만 했고, 장남인 B에게만 유산을 몰아주었기 때문에 무효다.

② ‘유언장’이라는 제목을 쓰지 않았으므로, 유언장으로 볼 수 없어 무효다.

③ A씨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지 않아 무효다.

④ A씨의 서명은 있지만, 인감도장이 날인되지 않고 소위 ‘막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에 무효다.

⑤ A씨의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아 무효다.

⑥봉투 입구의 봉한 부분에 도장을 찍어 두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다.

⑦A씨가 사망한 즉시 다른 상속인에게 보여 주거나, 법원에서 확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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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그 전문(全文)과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自書)하고 날인하여야 한다는 방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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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제들의 주장에 대한 답은 A씨의 유언장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방식을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①상속재산을 개별적으로 특정하지 않더라도 그 범위를 특정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 사례에서는 ‘모든 재산’이라고 했으므로 범위가 특정되었다. 한편 일부 상속인에게 상속재산을 몰아주고, 나머지 법정상속인을 상속에서 배제한 것만으로는 법률이나 선량한 풍속에 위반돼 무효라고 할 수 없다.

②유언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부분을 유언자가 직접 쓰면 충분하므로, 유언장의 용지나 형식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유언장’이라는 기재가 없거나 일반적인 법률문서의 형태가 아니어도 되고, 일기·편지·메모의 형식이라도 상관없다. 한편 자서(自書)는 유언자가 스스로 쓰는 것을 의미하고, 컴퓨터 등 기계를 이용해 작성하거나 다른 사람이 대필하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③유언자의 성명도 반드시 자서하여야 하지만 주민등록증이나 가족관계등록부와 같은 공적 장부에 있는 것일 필요는 없고,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나 호, 별명이어도 무방하며, 이름만 쓰고 성(姓)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유언장을 작성한 날짜를 빠뜨리면 안 되지만, 주민등록번호나 생년월일을 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④유언자는 반드시 날인을 하여야 하고 이 부분이 빠지면 유언 전체가 무효가 된다. 서명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지만, 그 도장이 반드시 행정청에 신고된 인감도장일 필요는 없고, 손도장(拇印)으로도 가능하다.

⑤유언자의 주소가 자필로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무효이다. 유언자의 생활 근거가 되는 곳이면 되고, 반드시 주민등록상 주소가 아니어도 된다. 다만 주거지를 특정하여 다른 주소와 구별할 정도는 되어야 하므로, 사례에서처럼 ‘대치동에서’라고 기재한 정도로는 안 된다.

⑥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유언자가 유언증서를 넣은 봉투를 2인 이상의 증인 앞에 보이고 그 증인들의 서명 또는 날인을 그 봉투 표면에 받는 방식)은 유언증서가 있는 봉투나 봉서를 훼손하지 않고는 개봉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하고, 그 봉한 지점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는 이러한 봉인이 필요하지 않다.

⑦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위조나 변조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부동산의 등기와 같이 유언의 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법원의 검인 절차(판사가 유언장의 방식이나 모습 등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것)를 거쳐야 한다. 검인청구는 유언자의 사망 후 바로 해야 하지만, 늦더라도 유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검인절차는 유언서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상태를 확정하기 위한 것에 불과할 뿐이므로, 검인절차를 거쳤는지에 따라 유언의 효력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유언의 존재를 다른 상속인에게 알렸는지도 유언의 효력과는 무관하다.

사망한 A씨의 유언장에는 ⑤에 해당하는 유언자의 주소가 자필로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A씨의 유언장은 효력을 잃어 고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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