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서운해 할 때 떠난다, 진짜 고마웠다” 나훈아의 라스트 콘서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나훈아 은퇴 공연 리뷰]

58년만에 은퇴 공식화...마지막 전국 투어

첫 날 무대인 인천서 “마이크 내려놓는다”

팬들 “이젠 국민은 누가 달래주나” 눈물

조선일보

나훈아./예아라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수 나훈아(77)가 데뷔 58년 만에 은퇴를 확정지었다. 27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약 2시간 25분간 총 22곡을 쏟아냈고, 수 차례 ‘은퇴’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는 “섭섭하냐”는 물음에 “응!”이라고 즉답하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가도 괜찮다 했으면, 제가 돌아서는 모습에 만약 여러분이 서운해 안 했으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객석에선 ‘이제 국민은 누가 달래주나!’ ‘기장 갈매기는 계속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투표로’ 등 플래카드와 함께 “안돼, 안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일부 관객은 눈물을 훔쳤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곡은 ‘사내’였다. 나훈아는 이 곡의 막바지 “훈아(원곡 가사는 사내)답게 살다가/훈아답게”를 부르던 중 갑자기 노래를 멈췄고, “여러분, 전 이제 마이크를 내려놓기 때문에 노래할 수 없다. 여러분이 대신 (마지막 가사 ‘갈 거다’를 이어서) 노래해 주시라”며 객석에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이후 드론비행기에 마이크를 달아 날려보냈다. 돌아선 나훈아의 뒷모습이 리프트를 타고 무대 밑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 했다.

◇은퇴 ‘시사’에서 ‘쐐기’로…”다신 피아노 앞 앉지 않는다”

이날 공연은 지난 2월 나훈아가 ‘고마웠습니다(라스트콘서트)’란 부제와 은퇴를 시사하는 편지를 함께 공개하며 발표한 전국 투어 콘서트 첫 날이었다. 편지에는 ‘마이크를 내려놓겠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따르겠다’ 등의 표현이 있었지만 ‘은퇴’ 단어를 직접 쓰진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공연만 그만두고 작곡 활동만 이어갈 수도 있다”는 추측이 이어졌다.

조선일보

지난 2월 27일 나훈아가 소속사를 통해 공개한 편지. /예아라 예소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훈아는 이날 공연 초반부터 “우선 인천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자신의 은퇴 사실에 쐐기를 박았다. 공연 전 편지에 ‘은퇴’를 직접 안 쓴 것은 “싫어서 안 썼다. 꼭 밀려 (내려)가는 느낌이라서. 저는 아직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점쟁이들은 유튜브에서 제가 내년에 죽는다, 아픈게 보인다더라. 금년 2월 스물 다섯 가지 피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며 일본에서 검사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어 건강검진표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혹시 누구에게 곡이라도 써주며 연예계에 기웃기웃 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 (애초에) 후배 가수들도 잘 모르기에 누구에게 가사나 곡을 주지 않는다”며 “살짝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으로는 안 쳐다 볼 거다”고 했다. 나훈아는 데뷔 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열 때마다 1966년을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그간 ‘사랑’ ‘고향역’ ‘잡초’ 등 1200여 곡을 직접 쓰고 부르며 지난해까지도 활발한 신곡 발표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날 다시는 가수로도, 작곡가로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단언한 것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발매한 신곡 ‘기장갈매기’를 부른 직후 더욱 솔직한 은퇴 심경을 털어놨다. “태어나 직업이라고는 딱 하나 가수였다”며 “여러분, 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시는지요. 길거리 맛있는 게 있어도 ‘아~ 참자’. 먹는다고 누가 뭐라 안 하는데도 그냥 그러고 살았다”고 했다. 이어 선언했다. “이제 피아노 앞에 앉지 않을 겁니다. 기타, 만지지 않을 겁니다. 책은 봐도, 글은 쓰지 않으렵니다. 지금까지 남은 마흔 여덟 권의 일기장. 이제 일기도 안 쓸 겁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진짜!” 눈물을 참는 듯한 그의 얼굴에 박수가 쏟아졌다.

나훈아가 매 공연마다 노래 후렴구 ‘띠리~띠리띠리 띠리~’에 맞춰 만담처럼 속내를 터놓기로 유명한 곡 ‘공’의 무대 또한 이날은 좀 더 묵직했다. “제가 노래를 그만두기 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그만둬야겠다”며 운을 뗀 그는 “전 북쪽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긴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북쪽의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 가지고. 저거는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 혼자서 다 이야기 하고, 싫다고 하면 끝이다”라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제 전쟁에도 돈이 필요한 시대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을 막는데 하루 1조를 써서 99%를 막았다고 한다”며 “(북쪽에서)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객석에선 ‘옳소!’ ‘그렇지!’가 연신 이어졌다.

나훈아는 27·28일 양일간 인천을 시작으로 5월에는 청주(11일), 울산(18일), 6월에는 창원(1일), 천안(15일), 원주(22일), 7월에는 전주(6일)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전주 외에 예매가 먼저 진행된 13회차 공연 전석이 ‘나훈아의 마지막 투어’라며 빠르게 매진됐다. 나훈아는 올 하반기에도 추가 공연 일정을 발표할 계획이다.

조선일보

27일 오후 나훈아의 인천 단독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 이날 공연은 나훈아의 마지막 전국 투어이자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무대의 첫 일정이었다./윤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수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