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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세상읽기] ‘코로나 이후의 세계’ 그리고 한국 / 신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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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세계가 위기 속에 있다. 회합은 금지됐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 갇혔다. 모든 일상적인 것이 붕괴한 ‘애브노멀’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간사회의 대응은 일시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뉴 노멀’이 되어갈 것이다. 그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이 위기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단순히 익숙한 과거로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사회는 단지 일시정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되감기와 빨리 감기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서 심대한 구조 변동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세계화에 역행하는 힘이 급부상했다. 개방, 확산, 자유방임의 정신이 퇴각하고 그 자리에 경계, 차단, 규제가 핵심어로 등장했다. 그 극단에 인종주의, 민족주의, 지역차별 현상이 나타나지만 그와 동시에 공동체적 연대와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발견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세계로 확장된 인식의 지평이 국가, 공동체, 가족으로 되감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들은 세계를 디지털화하는 현대화를 가속화, 보편화, 내면화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정보사회,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자본주의 등 다양하게 불려온 최첨단 세계를 우리는 최단 기간 내에 집중학습 중이다. 이제까지 아날로그로 남아 있던 모든 곳으로 놀라운 신세계가 확장된다. 우리는 화상회의, 온라인 수업, 인터넷 쇼핑을 매일 실행하면서 신체와 정신을 개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1세기의 여러 구조적 문제가 전면화된다. 온라인 업무가 확대되고 노동의 형태가 유동화하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보호가 모호해진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흐려짐에 따라 사적인 시공간까지 노동통제가 침투해온다. 온라인 유통, 제약, 통신 등 일부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다른 부문의 더 많은 업체가 문을 닫고, 노동하는 사람들은 무급휴가, 임금 삭감, 해고의 위험과 불안에 처한다.

이런 상호모순적인 변화 경향들이 지구적 위기의 응축된 시공간에서 공존하며 각기 다른 미래를 향해 경합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 세계’의 윤곽이 만들어지는 압축적 시간이다. 옛 건물로 견딜 수 없는 폭풍이 몰아쳤을 때 제대로 재건축을 한다면 이전보다 더 튼튼한 집을 갖게 되지만, 만약 부분적 보수로 때우려 한다면 이후 오랫동안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한다.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인 것이다.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각국의 대응 차이가 이후의 장기적 발전 경로를 좌우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역사적 사례는 바로 1920~30년대 대공황이다. 이때 세계의 모든 산업국가는 총체적 위기에 빠졌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몇가지 대조되는 유형으로 갈라졌고 그 차이는 긴 미래의 차이로 이어졌다.

첫째는 파시즘의 길이다. 독일에선 나치당이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독재체제를 수립했고 전쟁과 대량학살을 자행하다 민족적 파탄으로 귀결됐다. 둘째는 제도적 관성이다. 당시 선진 복지국가였던 영국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더 관대하게 하는 등 국부적 위기대응에 그쳤다. 셋째는 한시적 혁신이다. 1933년 시작된 미국의 뉴딜 정책은 소득 보장, 일자리 안정, 노사관계 개혁 등 많은 혁신정책을 포함했지만 구조 개혁에 실패했다. 넷째가 국가 대개혁의 사례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32년에 집권하여 이후 44년 동안 실용적 포용정책을 펼쳐 복지국가, 노사 협력, 경제 번영이 함께 가는 세계의 모범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위기가 대공황에 비견할 만한 규모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세계적 수준에서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소득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미래는 불확실해지며, 기존 복지체계에 맞지 않은 새로운 위험분배 구조가 커질 것이다. 일회적, 선별적, 부분적인 처방으로 다룰 수 있는 위기가 아니다.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위기 이후’ 그 사회의 모습을 많은 부분 결정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 정부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서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대응으로 세계의 모범을 창출했듯이, 그보다 더 장기적인 발전 경로를 좌우할 사회경제정책에서도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선도하길 기대한다. 모든 계층의 국민을 포용하는 국가를 통해 국민적 연대의 힘과 가치를 몸소 경험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창안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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