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그때의 금모으기처럼… '착한 소비' 바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업·소비자, 소상공인 살리기…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며 확산

급식용 농산물 올리면 완판

동네 식당서 도시락 주문

꽃 사거나 선물받고 인증사진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순두부찌개 전문점. 평일 점심시간이면 근처 문화센터 수강생으로 108석(席)이 모두 차는 동네 맛집이지만, 한 달 전부터 점심 손님이 30명이 채 안 된다. 지난 23일 이 가게 조용우(58) 사장은 뜻밖의 일을 겪었다. 단골손님 2명이 와서 순두부 백반 2인분과 음료수 등 2만원어치를 먹고선 카드로 5만원을 결제해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는 조 사장에게 "나중에 와서 또 먹을 테니, 미리 계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식사비의 두 배 정도를 결제하는 손님이 7개 팀이었다. 손님들은 "힘내시라" "장사 잘될 때 서비스 많이 주세요"라면서도 자신들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조 사장은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데, 이런 손님 때문에 용기가 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존폐의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선(先)결제를 하거나 주위에 구매를 독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개별 소비자와 기업·지방자치단체 등이 나서 '착한 소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행사 취소로 울상인 화훼 농가를 돕기 위한 '꽃바구니 인증 챌린지', 개학 연기로 직격탄을 맞은 '급식용 농산물' 온라인 구입, 재택근무로 손님 끊긴 식당가 '도시락' 주문, 단골 상점 선결제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확산하는 '착한 소비' 운동

최근 인터넷 지역 '맘카페'에는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화훼농가 살리기 동참했어요" 같은 글과 함께 화사한 꽃다발 인증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졸업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매출이 급감한 화훼농가를 돕는 '플라워 버킷(꽃바구니) 챌린지' '부케(Bouquet) 챌린지'다. 꽃을 구입하거나 선물받은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인증 사진을 올린 뒤 다른 사람을 1~3명 지목해 꽃을 선물하는 릴레이 운동이다. 정치인·기업인은 물론 연예인도 참여했다.

조선일보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꽃바구니 선물 릴레이 운동에 동참한 개그우먼 김숙씨. /김숙 인스타그램


3~4월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 예정이었지만, 개학 연기로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농가를 돕는 '급식용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도 인기다. 경기도 온라인몰 '마켓경기'에서는 지난 23일 급식용 무농약 채소 10종 꾸러미 세트(2만원)를 판매했는데, 2시간 만에 7000건이 넘는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런 학교 급식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한 착한 구매가 약 1만5000건에 달한다. 경기농식품진흥원 관계자는 "예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준비한 물량이 부족했을 정도"라며 "농민들이 고맙다며 직접 물류센터를 찾아와서 포장·분류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감자, 동해시 오징어 등 지자체가 판을 깔면, 소비자들이 관련 정보를 온라인으로 퍼 나르고 '완판'으로 화답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은 '도시락'을 앞세워 동네 식당 살리기에 나섰다. KT는 지난 16일부터 광화문 인근과 서초구 우면동 인근 식당에서 만든 도시락을 사내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유동인구가 줄면서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식당을 살리자는 취지다. 광화문 인근 한식·일식당 등 16곳, 우면동 9곳 식당에서 지금까지 일주일에 1000개씩, 2000개의 직원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지난 16일부터 대구 시내 영구임대단지 주변의 식당 41곳을 섭외하고 임대단지 독거 노인 1060명에게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런 '착한 소비'를 확산하기 위해 31일 소상공인연합회와 선결제·재방문 약속 운동 확산을 위한 업무 협약식을 열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기업도 필수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식당, 카페, 주변 상가를 찾아 선결제·재방문 약속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장 직무대행은 "소상공인 매출이 90% 넘게 떨어지며 공과금도 못 내는 극한의 위기에 내몰렸다"며 "기업에서도 골목 경제 살리기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착한 구독 경제로 확산

'착한 소비' 운동은 소셜미디어의 '좋아요'나 '인증사진', 해시태그 캠페인을 타고 확산 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친절하고 미용실 솜씨 좋은 원장님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10만원을 선결제했다"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2만원을 결제했다" 등의 글이 올라온다. 약 2만4000명의 회원을 둔 경기도 시흥의 한 맘카페는 지역 업체와 제휴를 맺고 '지역 화폐로 선결제를 하고 할인받는 운동'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선결제·재방문 운동은 '착한 소비' 개념을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 모델에 결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코로나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을 위해 구독자처럼 일정한 금액을 내고 재구매를 반복적으로 하는 형태다. 가게들도 '착한 소비'에 호응하고 있다. 자영업 살리기 운동을 하는 서울 양천구의 상점들은 '선결제·재방문 운동' 참여 고객에게 10% 할인, '곱빼기' 서비스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

[한경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