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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n번방' 그놈들, 왜 봉사활동에 집착했나 [한승곤의 사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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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등 'n번방' 가해자들 봉사활동

일부서 두 얼굴 이중적 모습 아니냐는 지적도

'양형 조건'에서 유리한 위치 얻으려는 파렴치한 행동 의혹도

아시아경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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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만든 혐의 등으로 구속된 조주빈(25·구속)은 과거 수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두 얼굴, 이중적인 모습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자신의 범행이 발각돼 재판에 넘겨지면, 양형 조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의도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사실상 끝까지 반성은커녕, 오로지 자신을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검거를 대비해 봉사활동을 통해 감형을 준비했을 수 있다는 일종의 체포 후 전략인 셈이다.


'n번방' 사건 연루자들은 조주빈을 포함해 대부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텔레그램에서 '음란 물' 방을 운영한 A 씨, 협박 빌미로 사용된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회복무요원 등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 사이트에 등록된 조주빈의 기록을 보면 그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총 57차례 자원봉사를 했다. 인천 모 비정부기구 봉사단체에서 한 달에 1차례 정도 장애인 시설과 미혼모 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했다.


또 텔레그램에서 '음란물 방'을 만들어 유료 회원방을 운영하다 지난해 10월 경찰에 체포된 A 씨 역시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한 텔레그렘 대화방에 올린 글에서 "박사와 비슷한 수준의 봉사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조주빈을 도운 사회복무요원도 과거 장애인 목욕 봉사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온라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함께 살아간다는 기쁨을 얻고 싶다"는 후기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지난 2013년부터 담임교사를 스토킹하다 소년 보호처분을 받고, 학교에서 자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시점은 봉사활동 시점과 겹친다.


조주빈 역시 봉사활동을 하며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드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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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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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한 범행 뒤 봉사활동? 이중적 모습 아닌 '양형' 노린 의도적 행동 의혹도


그러나 이들의 이런 봉사활동은 범죄자의 이중적 모습,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측면의 모습이라기보다 그저 자신의 범행 형량을 낮추기위한 일종의 방어적 행동이라는 지적이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봉사활동 여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를 반성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다. 범행 이전에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면 성실하게 삶을 살아왔다고 인정될 수 있고, 이는 곧 감경받을 수 있는 요건으로 성립될 수 있다.


문제는 그저 처벌 수위만을 낮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다. 성범죄자들의 감형 전략으로 봉사활동이 쓰이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성범죄자들로 추정되는 회원이 많은 한 인터넷 카페에는 봉사활동을 권장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양형 조건에서 유리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각종 요건을 묻고 또 실행하기 위함이다.


카페 한 회원은 자신은 기소유예(범행이 인정되나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미)를 받았다면서 "반성문을 계속 쓰고 봉사활동도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회원은 "양형에 참작할 때 봉사활동"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감형에 적절한 봉사활동을 묻기도 했다.


다른 카페에는 아예 재판에서 양형 자료가 될 수 있는 △반성문, △탄원서, △성범죄교육 이수 자료증, △봉사활동증명서, 기부내역서, 헌혈증, 등과 같은 실질적인 자료들을 구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 같은 봉사활동 등 이력은 실제 양형 과정에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 판결문을 보면 '양형의 이유'에서 재판부는 "2009년경부터 지역봉사단체의 총무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왔던 점"을 들었다.


또 불법촬영 등 혐의로 2015년 재판에 넘겨진 C 씨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다시는 범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이라고 판시했다. 해당 피고인은 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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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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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성범죄자들의 처벌은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 수준에 불과하다. 아동 음란물 범죄자들은 그 범행에 비해 사실상 약한 처벌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7년 내놓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 연구에 따르면, 음란물 제작 등 사건의 1심 선고 유형은 벌금형이 38.5%로 가장 많았다.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37.2%에 달했다. 유기징역에 처한 사례는 23.1%에 불과했다. 1심 유기징역 평균 형량은 38.22개월이고, 전자발찌 부착 명령과 신상공개 명령을 선고한 비율이 각각 1.3%, 1.7%에 불과했다. 선고유예는 1.2%였다.


반면, 다른 나라의 경우 아동·청소년 성 착취 영상을 소지하는 일만으로도 중형을 선고한다. 미국은 아동 음란물 소지자에 대해 징역 최하 5년·최고 20년을, 영국은 구금 26주에서 3년 처벌을 내린다.


전문가는 범죄자들의 봉사활동 목적에 대해 사실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양형 조건에서 범죄자들이 유리하게 형을 낮출 수 있는 일종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조주빈 등 범죄자들의 봉사활동 목적에 대해 당사자 아니면 그 목적을 알 수 없다"면서 "봉사활동에 따른 감형 등은 재판부 재량이라, 범행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반성을 하는지 등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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